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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정세진 아나운서의 행동이 눈물나는 이유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점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더듬어보면 만화영화에서는 각종 동물들이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동물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직접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프거나 슬퍼서는 동물도 울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지만 눈물나도록 감동스러운 경우 울 수 있는 특권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감동의 순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


사람은 타인의 거룩하고 용기 있는 행동을 보면 감동하고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한 행동에는 보통 자기 희생이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시간, 돈, 명예 그리고 생명을 내던지면서까지 더 숭고한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더 건강하고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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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천안문 사태 당시 맨몸으로 탱크를 가로막았던 시민 : 출처 : 한겨레]



정세진 아나운서는 KBS 뉴스9를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진행했던 간판 아나운서입니다.  그 외에도 '노래의 날개 위에'라는 클라식 라디오 방송의 DJ로도 활약하며 신뢰감 있고, 차분한 인상을 주는 방송인으로 기억되어졌 있습니다.


정세진 아나운서는 2010년 KBS 파업 당시, 간판 아나운서로서,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새노조 파업의 선봉에 서서 열심히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파업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버리자, 정 아나운서의 '눈물'에 관한 기사가 일간지에 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 KBS는 아직도 파업 중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KBS는 노동조합이 두개로 분리되어있기 때문에 파업을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의 차이가 심하게 나는 회사입니다. 당시에도 공정 방송 사수, 낙하산 인사 퇴진 등의 동일한 이슈가 있었지만 다수의 KBS 노동조합은 침묵하였고, 소수의 KBS 새노조만 파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업 참가자수도 부족하고, 노동조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입한 노조가 어느 곳이냐에 따라 파업참여의 부담감이 덜했을 수 있습니다. 


결국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만 엄청난 부담감과 불이익의 대상이 되기에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2년 현재 51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KBS 새노조 역시 2010년과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단지 파업의 대상이 레임덕으로 예전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정세진 아나운서 출처 : KBS]



▲ 정세진 아나운서의 복귀, 'KBS 뉴스9'가 아니라 "KBS 리셋뉴스9'


그런데 정세진 아나운서가 다시 뉴스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처음에 정세진 아나운서는 노조활동으로 사측에 약간 찍혀 있을텐데 파업 중인 요즘 어떻게 뉴스에 복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KBS 정규방송 뉴스 진행이 아니라 KBS 새노조의 '리셋뉴스9'의 앵커로 화려한 복귀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너무나 환영합니다. 원래 차분하고 신뢰감 주는 음성의 정아나운서가 전공인 뉴스를 다시 맡게 되어 기쁘고, 그것이 '뉴스9'가 아니라  '리셋뉴스9'라 더더욱 박수를 보냅니다. 현재 KBS 정규 방송 뉴스는 김빠지고, 의도적인 정보 전달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블로그에 찾아오시는 상당수의 분들이 KBS 뉴스 안 본지 오래되었다는 답글을 남겨주시곤 합니다. 


저 역시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관심 분야의 단편 뉴스를 KBS가 어떻게 보도하는지 비교해 보려고 뉴스를 찾지, 미디어로서의 기대는 거의 안하고 본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러한 정규 KBS 뉴스에 비해서 '리셋뉴스9'은 50여일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으로서, 기자로서 많은 공적을 쌓았습니다.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올해의 기자상을 수상한 리셋 kbs뉴스9 팀, 출처 : KBS 새노조] 



▲ 각종 기자상을 휩쓸고 있는 KBS 새노조 리셋뉴스9 


특히 어제(4월 25일)는 한국기자협회로부터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 단독 보도'에 대한 공로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방송학회에서 주는 방송 기자상까지 싹쓸이 했다고 하니 이들의 기자로서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작 KBS 정규 뉴스가 제대로 다루지 못한 사안에 대해 파업 중인 노조가 열악한 상황에서 제작한 뉴스로 기자상을 휩쓸고 있다고 하니, 누군가는 참으로 반성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일 때되면 KBS 전파를 타고 방송되는 정규 뉴스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리셋 KBS뉴스9가 더 신뢰가 가고 즐겨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리셋뉴스9 이기에 KBS에서 가장 뉴스 진행을 잘하는 정세진 아나운서가 앵커를 맡는 것은 당연하고 환영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정세진 아나운서 뉴스 복귀가 눈물나는 이유


왜냐하면 '리셋뉴스9'의 제작진에 대해 KBS 사측은 이미 징계를 예고하고 있고, 실제 앵커를 맡았던 엄경철 기자와 제작 총괄을 맡은 김경래 기자 역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세진 아나운서의 리셋뉴스9 앵커 진행 수락은 한마디로 기름통을 들고 자진하여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인 것입니다. 


그래서 정세진 아나운서의 징계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태연히 리셋뉴스9 앵커 자리를 맡은 용기있는 행동에 대해 눈물나도록 감동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징계를 당할 것에 대한 안스러움이 교차하는 것입니다. 이쯤은 되어야지 사회의 '진실'을 다루는 참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이 공채 언론인인지 예능인인지 구분 못하는 요즘 일부 언론인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2010년 7월29일 KBS 새노조의 정세진 조합원(왼쪽.아나운서)이 파업을 접었을 당시 울음을 멈추고 후배 조합원들과 함께 촬영에 응했던 모습. 출처 : 미디어오늘,이치열 기자 truth710@]



▲ 우리는 모두 연약한 한 개인


물론 한 개인의 선택이며 행동에 대해 지나치게 평가 절상을 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말로는 정의와 진실을 외치지만 정작 자기에게 쌀톨만큼의 불이익이 다가온다면 침묵해버리는  이 시대에, 자기 소중한 직장을 걸고서 자신의 본분을 지켜낸다는 것은 그리 평가 절하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지금 글을 쓰는 저 역시 글로는 세상의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불이익 또는 불편에 대해 항상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일개 개인일 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나에게 정아나운서와 같은 경우가 생긴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선뜻 말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정세진 아나운서는 리셋뉴스9의 앵커를 맡지 않아도 누가 비겁하다고 욕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KBS 새노조가 제안을 하였고, 거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 인사 조치가 있음을 알면서도 흔쾌히 수락한 것입니다. 



▲ 한 개인의 희생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연대와 집단 지성의 책임감을 가졌으면.....


그리고 이런 상황을 잘 아는 KBS 새노조 역시 정아나운서를 혼자 불 속에 내보내지는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 아나운서 앵커 기용을 맞아 KBS리셋뉴스9 제작에 기자 인력을 총동원하여 조합원들의 연대를 통한 '집단 지성의 집단 책임'으로 대응하겠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사측에서 리셋뉴스9을 만드는 모든 인원을 징계, 인사조치를 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파업 참여 전 조합원이 리셋뉴스9 제작에 참여해 모두 징계 대상이 되어버리겠다는 맞불 작전인 것입니다. 


저는 이 싸움이 빨리 끝나길 바랍니다. KBS 소속 기자들이 뉴스를 만들어 외부 언론단체로부터 잘했다고 상을 받는 마당에 잘했다고 칭찬을 못해줄 망정, 징계와 인사권을 휘두르는 KBS경영진을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까지 받는 언론인들이 파업을 할 때는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음은 당연하고, 그 이유가 옳을 것이라는 데에 더 많은 믿음이 갑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옳지 않은 일에 자기 희생과 같은 숭고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희생은 자기 이기심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통 잘못된 일에 동원되는 것이 이기심이고 옳은 일에 바쳐지는 것이 자기 희생입니다. 


뻔히 불이익을 당할 줄 알면서 그 잔을 거부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옳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이런 가치 추구의 욕구마저 상실된다면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정세진 아나운서가 앵커로 참여하는 리셋 KBS뉴스9 은 바로 오늘 업데이트 됩니다. 많은 분들의 시청과 응원 바랍니다. (Reset KBS 뉴스9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