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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남양유업 자정결의대회, 오만과 편견의 결과

예전에 직장생활하다가 참 어처구니 없는 대기업 윤리 '이벤트'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협력업체를 초청해 놓고 유명대학 철학 교수를 초빙하여 '윤리경영'에 대한 특강을 듣는 자리였습니다. 어찌나 윤리를 강조하고 정도 경영을 이야기하던지 듣는 제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철학교수님이 어렵고 현학적인 이야기를 많이도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법과 질서, 윤리를 잘 지키면 현재는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승리'하게 된다는 그림같은 이야기 였습니다. 당시 우리 회사가 요즘 회자되는 철저한 갑과 을의 관계였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강의 들으러 오라면 가야했고 출석까지 체크했기 때문에 끝까지 윤리 특강을 다 듣고 나왔더랬습니다. 


혹시나 윤리 특강을 펼쳤던 철학 교수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당당하게 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수님 말씀이 모두 다 맞지만 한가지 틀린 것, 그것은 법과 질서, 윤리가 궁극의 승리를 거두려면 사회가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세상은 상식에서 벗어났는데 윤리를 강조한다? 이것은 선한 사람들을 길들이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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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으로는 윤리 경영, 안에서는 직원 감시, 부당 해고

그리고 5~6년이 흘렀습니다.  그 대기업이라는 곳, 대한민국에서 윤리 경영으로 꽃을 피웠을 줄 알았는데 얼마 전 기사를 접하니 무노조 경영으로 직원 등급 관리, 부당 해고의 칼바람을 날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비윤리 경영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5~6년 전 윤리특강과 같은 협력업체에게는 '고문'과 같은 시간을 갖게 하더니 너무나 한심하고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가만히나 있었으면 중간이나 가지, 앞에서는 윤리경영 한다고 설치고 다니면서 뒤로는 직원을 사람으로 대접해야한다는 윤리의 기본을 망각했으니 비웃음과 가소로움이 배로 더 했던 것 같습니다.





[천편일률적인 복장과 자세, 남양유업 자정결의대회 모습]



▲ 남양유업 자정결의대회, 무엇이 깨끗해졌을까?

갑의 횡포, 을의 설움, 경제 민주화 이슈를 만들어냈던 남양유업이 자정결의대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론에 발표된 보도자료 사진을 보고 약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양복 색깔은 사전에 일률적으로 맞추었고 어깨에 두른 띠만 보아도 우익단체 규탄집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남양유업 김웅 대표이사까지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임직원 모두 겸허하게 자기성찰을 하고 환골탈태 해야한다'고 강조했고, '부당행위는 일벌백계하겠다' 며 '모든 임직원이 예를 생활화하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관련기사)  또한 회사측은 '남양 예절학교'까지 만들어서 영업사원 교육을 시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 결의대회는 공공장소에서 시민들과 대리점주들이 보는 가운데 했어야 

그런데 남양유업의 자정결의대회와 내용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진정성이 느껴지 않습니다. 먼저 이날 결의 대회는 서울 본사가 아니라 남양유업 천안신공장 덕정홀에서 열렸습니다. 결의대회라는 것이 솔직히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행사입니다. 그리고 자정결의대회에 꼭 참석해야 하는 사람들은 경영진과 영업조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이 아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 도시, 남양유업 공장에서 했다는 것이 결의에 대한 '의지'가 빈약해 보이는 것입니다. 자정결의대회가 진정성 있으려면 서울에서, 본인들의 회사나 공장이 아닌 공공 장소에서, 시민과 대리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들의 결의를 밝혔어야 합니다. 




▲ 결의대회에 동원한 직원들은?

이와같은 점이 매우 큰 아쉬움으로 남고 또다른 문제는 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결국 이것을 위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결의대회에 참석해야하는 사람들은 남양유업의 주장대로 라면 '영업사원'들입니다. 그런데 영업사원은 지방보다는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고 이 모임을 위해 다수의 영업 사원들이 천안 공장으로 시간 내어 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남양의 직원들은 자기 본연의 업무를 내려놓고 이 행사를 참석하기 위해 미리 정해놓은 복장을 갖춰입고 참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만약 이날 행사가 전국의 영업 사원은 배제하고 천안공장 직원들만의 자정 결의대회였다면 진정성에 의문이 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밀어내기와는 직접적 연관도 없는 공장직 직원들을 모아놓고 자정결의대회를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모든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남양유업 아직도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남양유업은 아직도 왜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유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기 직원이면 오라가라 마음대로 해도 되고 대리점주는 자기들이 갑이니까 얼마든지 밀어내기를 해도 당연하다는 생각, 즉 사람을 존중하고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해먹는 '부속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협의하고 상생하기보다는, 명령하고 '까라면 까야하는 수직적 조직문화를 신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합뉴스가 보도한 남양유업 자정결의대회 3장의 사진을 보면서 무척 더운 날씨에 한명 정도는 웃도리를 벗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양복 색깔은 몇 명 정도는 연한 회색을 입을 법 한데, 이날 행사에 참석한 분들 사전에 복장에 대해서 지시를 받았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원래 이것이 남양유업 출근 복장이라면 더더욱 안타까운 현실이구요.





[낭양유업 홈페이지 사과문]





▲ 남양유업 오만과 편견에 함께 사로잡혀

그리고 가장 고약한 것은 남양유업은 사과를 하고 있지만 잘못한 이유가 자신들의 '부당함'이 아니라 영업사원의 예의범절 문제'로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업사원이 남양예절학교가서 예의범절을 벌이면 남양유업의 대리점주 횡포 문제가 사라질까요? 저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남양유업의 회사경영방침의 문제이기 '예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사과하고 자정결의대회를 열고 있지만 검찰 조사에 나가서는 대리점주에 대한 '부당행위'는 없었다고 '혐의부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남양유업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리점주에게 부당행위가 없었다면 홈페이지에 왜 사과문을 걸어놓고 대표이사가 사과 기자회견을 했으며, 자정결의대회까지 하는 것입니까? 잘못이 있었기에 사과를 한 것이고 사과를 했다면 뉘우치고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상식' 아닐까요?


남양유업의 이율배반적인 행동들을 보면서 아직도 그들은 자신들만의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웠습니다. 오만하기만 하면 겸손을 알려주면 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정도'를  일러주면 되는데 '오만과 편견'에 함께 갖혀있다면 처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