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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천안함] 엄숙주의에의 강요


[도처에 매달린 천안함 사망자에 대한 애도 플랭카드]

대한민국은 천안함 침몰로 한달 째 슬픔과 엄숙함에 갇혀있습니다. 선채도 인양하고 침몰 원인이 나오기는 하지만 처음에 보여주었던 정부와 언론의 우왕좌왕에 더 이상 신뢰를 찾아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군함이 침몰하고 거기에 승선했던 사람들의 죽음은 당연히 가슴 아픈 일이고 애도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 애도의 물결이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그리고 슬픔에 대비하여 국민들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권리마져 빼앗아 버린 지금의 상황은 비상식적인 상태입니다. 


[천안함 사망자들의 죽음은 애도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후예며 영웅이라는 주장은 왜곡된 애국주의입니다]

개그콘서트는 한달째 결방이고 텔레비젼을 켜면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과 딱딱한 프로그램만 재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에 나서도 근조의 플랭카드들...

이런 상황에서 웃고 즐기면 안되는 것일까요?
현 상황이 도대체 어떤 상황이기에 엄숙함을 강요하고 웃음을 빼앗는 것일까요?

웃음에 대한 극과 극의 대립을 보여준 책이 있으니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입니다.



[웃음은 사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호르게] 출처 : 영화 장미의 이름 

중세 유럽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의문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러 파견된 윌리엄 수사와 
웃음은 사악한 것이라 생각하여 책장에 독을 묻혀 웃음의 모티브가 되는 아리스토렐레스의 '시학'이라는 책을 보는 수도사들을 죽게 만드는 호르게 수도원장과 팽팽한 대립구조를 다룬 소설입니다. 


[웃음은 세상을 풍자하여 긍정적 시각을 준다고 주장하는 윌리엄] 영화 : 장미의 이름 

수능 논술의 주제로도 여러번 등장했던 웃음의 문제 


 
 





 


   























 츨처 :  http://blog.naver.com/hanuinuri/ 하늬누리님


호르게는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살인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에 대해 신의 이름으로 합리화합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신의 뜻이기에 자기는 웃음을 금지했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 신이 자신을 부정한 인간에게 악마의 사슬을 씌워 처단하는 '사랑'이 결여된 왜곡된 종교관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단지 중세의 외딴 수도원에서만 이루어졌을까요? 역사적으로 신의 이름으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만행과 억압은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공통점은 그런 만행과 억압의 주체는 항상 선을 가장한다는 것이지요. 자신은 선하고, 눈물 흘리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희생을 치루고 악을 물리친다는 주장을 합니다. 

웃음을 저주했고, 자신이 가장 신을 잘 믿고, 그것에 반대하는 자는 악마이기에 죽어도 된다는 생각에 빠져 살인도 서슴치 않았던 호르게 원장에게 윌리엄이 한말로 이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속은 겁니다. 악마는 물질의 왕자가 아닙니다. 
     악마란 정신의 오만, 웃음이 없는 신앙, 한번도 의심을 받지 않은 진리입니다. 
     악마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에 냉혹하며, 
     움직여도 늘 출발점으로 돌아갑니다. 
     당신은 악마입니다. 또 악마와 마찬가지로 암흑 속에서 삽니다. 
     나를 설득하려 했다면 그건 실패입니다.' 

[출처 : 장미의 이름 중에서]


   [웃는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