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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크/Dead Can Dance

[REVIEW] DEAD CAN DANCE 에 대하여




-DEAD CAN DANCE [SONG OF THE STARS]-

@ 시 작 하 며

[대부분의 악기에서 소리내는 장치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반면 실제 소리내는 것은 생명적인 것에 기원한다. 각 문화마다 음악은 주술적으로 사용되어졌고, 그러므로 언제나 악기를 만드는데는 살아있는 생물의 희생을 필요로 했다. 그 생명의 영혼은 악기의 일부분이 되고, 소리나는 음에서 죽음의 노래는 아직까지 우리와 함께하며 자신의 소리를 스스로에게 들려준다.]


       [HARMONIES OF HEAVEN AND EARTH] -JOSCELYN GODDEN. 1987

 

  위에 글을 읽어보면 우리의 생각으로는 미개인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옛날 원시부족들의 음악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음악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진지하며 영적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원시인들은 육체와 정신을 구별할 수 있는 사고 체계를 가지지 못했으므로 (본인이 알기로는 육체와 정신의 분리는 근대의 소산이며 정신과 육체의 분리와 같은 이분적 사고를 갖게 된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버지를 먹는 행위가 자신의 몸속에 아버지의 영혼을 담는거라는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역사를 뒤돌아볼때 현재 우리에게까지 전해져온 음악의 역사가 올바른 위치를 찾아서 제대로 발전해 온 것인지 아니면 타락의 역사였는지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과 같이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악기와 생명의 피를 희생 삼아 영을 주입한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 어떤 것이 더 긍정의 편에 설지 쉽게 결론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음악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

  @ DEAD CAN DANCE

 어쩌면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소개하려는 DEAD CAN DANCE는 솔직히 어느것 하나 속시원히 정의내릴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그룹니다. 영국태생의 BRENDAN FERRY와 불가리아계 LISA GERRARD가 주축이며 그외 많은 게스트 맴버들로 1984년 셀프타이틀 'DEAD CAN DANCE'를 발표하였다. LISA GERRARD는 DEAD CAN DANCE라는 그룹명을 '창조의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룹명에 대한 이해의 몫은 모두 각자에게 돌리는 바이다. 많이 생각해 보고 나름의 창조의 기쁨을 맛보시길. 그러면 죽은 깡통의 춤이 어색하지 않게 여러분 곁에 '쩔그렁쩔그렁' 생명을 얻어 다가올 테니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인터넷을 통해 이들의 콘서트 포스터를 관찰해 보는 것도 이해를 가속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DEAD CAN DANCE에 대한 설명은 접겠다. 왜냐하면 DEAD CAN DANCE라는 그룹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상당한 분량이 될 것이고 이들의 BIO가 현재 진행형인거와 같이 이들에 대한 나의 탐구 역시 진행형이라, 이들만을 위한 목적의 글이 아닌 곳에서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또한 DEAD CAN DANCE는 염연히 테크노 그룹이 아니며 내가 소개하려는 곡은 이들의 작품 중에서 테크노적 속성을 가진 소수의 곡 중 하나이기에 21세기 그루브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하는 것은 동호회의 
성격에도 위배된다는 생각에서이다. 

  @ DEAD CAN DANCE [SONG OF THE STARS]

 본인이 테크노의 주변부1 에서 테크노의 특질로 테크노뮤지션들이 첨단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는데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런 의미로 보면 DEAD CAN DANCE는 전혀 테크노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의 악기 구성을 보면 신써사이저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만 토속적이며 과거 중세의 악기를 복원하여 사용하는 등 시대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크노의 주변부로 이들을 선정한 이유는 이들이 갖는 리듬감 때문이다. 이들의 맴버 구성은 항시적이지 않은데, 각 맴버들을 보면 PIETER BOURKE, PASKAAL, JAPHET, NIGEL FEGG, PETER ULRICH 등 대부분이 리듬자체를 연구하고 각종 타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며 그룹의 오케레이션 담당 JOHN BONNER는 BRAIN ENO 등과 공동 작업을 했던 아티스트들이다.

테크노 역시 발전의 단계에서 전자악기로 전자음아닌 것처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 리듬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고, 그 끊임없는 BPM과 GROOVE감은 리듬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또한 테크노가 첨단의 악기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 내면의 정서마저 첨단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원시적이며 자유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그 원시성에서 진정한 TRANCE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지금 말하는 TRANCE는 테크노의 서브장르로서의 TRANCE가 아니라 정신의 상태로서의 TRANCE이다.

 테크노에서의 TRANCE가 단순한 전자음의 변형에서는 쉽게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리버스를 통해 음자체를 가지고 아무리 장난을 쳐도 약간은 몽롱함에 빠지게 할 수는 있겠지만 망아상태로의 진입을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음의 변형과 함께 끊임없는 리듬의 반복과 변조가 합쳐져야 TRANCE의 극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음악의 원시성에서 DEAD CAN DANCE에 결줄만한 그룹이 또 있을까? 이들의 연주는 생생한 날 것의 느낌 그대로 전해져 온다. 특히 LISA GERRARD의 보컬은 듣는 이를 중세의 신비로운 수도원으로, 또 아프리카의 열대림으로 이끈다. 

 이러한 공통점이 내가 DEAD CAN DANCE의 SONG OF THE THE STARS를 테크노의 주변부에 올려놓은 이유이다. 첫째 그들의 음악 전체를 관통하는 뛰어난 리듬감, 둘째 음악 속에 끝없이 살아 숨쉬는 원시성이고 이것의 목표가 TRANCE에 있다는 점이다. 



  @ [SONG OF THE STARS]



 처음 도입은 열대우림의 밤, 무성한 갈대 사이로 보여지는 별들을 상상하게 된다. 화자는 공중을 부유하며 앰피언트적 분위기로 시작을 알린다. 약간의 도입부가 끝나면 이들의 주특기인 복잡다난한 각종 리듬악기들이 잠시 전면에 나서는듯 하다가 정글의 효과음을 배경으로 BRENDAN FERRY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이 부분은 마치 영화 DOORS의 첫장면과 같이 몽롱한 영상을 상기시키는데 올리버 스톤이 실제 인식의 문에 대한 개념을 얻기 위해 아야후스카라는 인디언 약초를 사용하기도 하고 마약을 통한 황홀경에 심취되었던 감독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때 예사롭지 않은 공통점인 것 같다. 나레이션 내용 역시 SPIRIT에 대한 갈구이며 TRANCE에 들어서기 전 주술사의 주문과도 같은 느낌이 준다.

 나레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곡은 끊임없는 반복과 변형이 진행되며 각종 효과음과 리듬악기들의 조화롭게 어울리며 전개되어진다. 그리고 DEAD CAN DANCE에게는 다소 어울리지않을 거라 생각했던 기타가 마치 인식의 문으로 들어가는 영혼을 달래는 듯 절제된 애절함으로 반복된다. 

 인식의 문으로 들어가기가 힘들어서일까? 어쩌면 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고민하는 것일까? 생에 대한 미련... 아니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잠시동안의 애절함은 DEAD CAN DANCE에게는 다소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거친(?) 기타 리프로 극적전환하며 더 이상 뒤돌아 볼수 없는 인식의 문에 다달았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곳은 어쩌면 행복하고 좋은 곳인가 보다. TRNACE의 절정을 축하하기라도 하듯 BRENDAN FERRY의 저음의 노래에 맞추어 LISA의 고음에서의 백코러스가 정신을 고조시키고 분위기는 점점 격양되어지며 황홀경의 극치를 만끽하게 된다. 

 과연 그곳은 어떤 곳일까? 인디언들은 마을의 주술행사에서 몇날며칠을 황홀경에 취해 춤을 춘다고 하던데 SONG OF THE STARS는 주술행사의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하나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순수함이 파괴된 현대의 영혼은 몇날며칠은
 꿈꿀 수도 없고 한트랙의 시간에 만족해야만 하는 것 같다. 

 끝으로 치닫던 별들의 노래는 황홀경으로 떠난 영혼에 대해 남은이들의 넋두리, 아니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하는 슬픔의 푸념이 교차하는 아쉬움의 노래로 마무리 짓는다. 

  @ 아쉬움 

 내가 한국에 살면서 가장 답답하고 아쉬운 것은 한국사회에는 다양성이 결여되어있다는 점이다. DEAD CAN DANCE가 데뷰한 이후에 이들의 음악이 대한민국 공중파방송을 탄적이 몇번이나 있을까? 아마 있었어도 사람 손가락 수 내에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에 대한 인기와 관심이 사실 외국에서 상당하다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의 근거인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서 DEAD CAN DANCE를 검색해보면 전세계적으로 상당수의 사이트들이 잡히기 때문이다. 
 
 이것은 PROJERK레이블의 대부 SAM ROSENTHAL이 이끄는 BLACK TAPE FOR A BLUE GIRL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이런 희귀그룹을 누가 알겠어 하고 검색에 들어갔는데 검색결과가 나오는 순간 나의 생각이 얼마나 짧은 것인가를 반성한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음악듣기가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으면 한다. 

 돈과 인기의 노예들이 벌이는 축제에 초대되어 그들이 보여주는 헛된 쇼가 전부인 것 마냥 쇄뇌되어 우리의 감성이 강요되어지는 폭력적인 문화 소통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공간들이 확보되었으면 한다. 한국에는 더 많은 장르가 소개되어져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음악을 들었으면 한다. 
 



A. 그외 추천곡 

  1. Frontier      [DEAD CAN DANCE]
  2. Saltarello [AION]
  3. Sambatiki  

B. 내가 좋아하는 곡

  1. Summoning Of The Muse [Within The Realm Of A Dying Sun] 
  2. The Host Of Seraphim [The Serpent's Egg]
  3. Sanvean (i am your shadow) [The Mirror 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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