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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100분토론, 시사토론 방송의 종말을 고했다

요즘 MBC 보면 참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자기 전에 TV채널을 돌리다가 100분토론 광고가 나와서 오래간만에 토론 프로를 볼까 하여 본 방송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100분토론 주제가 '진보의 위기, 통합진보당 어디로?'였습니다. 제가 알기로 아직 통합진보당 사태는 마무리된 것도 아니고 진상 조사도 확실치 않다고 알려졌는데 이것을 가지고 토론이 될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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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패널 없이 통진당 위기를 토론?


그래서 통합진보당에서는 누가 나와서 변론을 할까 궁금하여 나온 토론자를 보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회자 오른쪽에는 김진 중앙일보 논설의원, 홍성걸 교수 왼쪽으로 진중권 교수, 이철희 소장 등이 나와 있더군요. 아니 현재 진행중인 통합진보당 문제에 대해서 통진당 사람 없이 토론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자도 이런 사실을 인식한 탓인지 사전에 통진당 관계자에게 참석을 요청하였으나 거절했다고 서두에서 밝혔습니다. 이렇게 사전에 친절을 베풀었다고 하여 주제 설정의 오류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법정에서 피고인을 변호사 없이 앉혀두고 절대로 판사와 검사가 말하는 동안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놓고, 나중에 판사가 검사말만 듣고 판결을 내리는 것과 똑같은 경우입니다. 


도대체 100분 토론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토론의 뜻이 무엇인지나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국어사전에 나온 '토론'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토론 : ① 어떤 문제 대하여 여러 사람 각자 의견 내세워 그것 정당함 논함 ② 각자 의견 내세워 그것 정당함 하다          (출처 :다음사전) 


사전에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의견을 말하여 정당함을 논하는 것이 토론입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주제에 대해서 찬반양론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하게 나와서 서로 충분한 주장과 논거를 통해 상대방과 청중을 설득하여 결국의 정당함을 가려내는 것이 토론인 것입니다. 



▲  확실치 않은 일에 대해 외부 인사들이 토론하는 것 자체가 오류


그런데 통합진보당에 부정, 부실 선거가 있었다는 사실과 이것에 대한 통합진보당 내부의 갈등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여기에 대해 정당함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외부의 비난과 비판이 있다면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에 대한 통진당 관계자의 자기 변론이나 방어를 들어볼 수 있는 것이 토론의 장이 되겠지만 모두 통진당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만 앉혀 놓고 무슨 토론을 하겠다는 것인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날 100분토론은 시작부터 참석자들이 모두 통진당 비난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한 패널은 통진당의 부정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자기들만 왜 모르는 지 이해가 안된다면서 정신병 운운하였고, 이미 예전 백분토론에서 촛불시위를 난동이라 표현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김진 논설위원은 안철수, 문재인까지 들먹이며 공중파 방송에 나와 할말 못할말 다 쏟아붇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보논객을 자처하지만 얼마전 통합진보당을 호되게 비판했던 진중권 교수가 진보의 아이콘인 것 마냥 토론장에 나와 있는 것도 꼴불견이었습니다.  여기 나온 사람들로 무슨 토론을 하겠다는 것인지 저는 잠깐 보다가 짜증이 몰려와 그냥 꺼버렸습니다. 


MBC는 PD수첩으로 대표되는 시사 보도 분야는 이미 제 기능을 못하거나 폐지된 지 오래되었고, 100분토론 역시 MBC 파업 이후 더욱더 형식과 내용에서 형편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토론 프로그램은 MBC내부의 사람이 아니라 외부 토론자를 불러와야 하는 형식이라 그나마 형평성은 유지하였는데, 어제처럼 주제가 토론에 걸맞지 않고, 토론자 또한 비판할 줄만 알았지 변호하거나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한다는 것은 토론 프로그램이길 포기했다고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  토론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성토의 장이 된 백분토론


이럴 바에야 '100분 토론'이 아니라 '100분 성토' 라고 이름 짓고 자신들이 보기 싫은 집단들에 대해서 100분 동안 열심히 대공포화를 쏘아올려 망신창이를 만드는 막장토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예전에 손석희 교수가 진행했을 때의 그 긴장감과 공평성, 그리고 주제의 깊이 등은 온데간데 없고, 그렇게 뉴스에서 울궈 먹었으면 되었지 이제는 토론 프로그램에까지 등장시켜 통합진보당을 장렬히 전사시키려는 언론의 추태는 짜증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현재 통진당 사태에 대해서는 누구나다 압니다. 통진당이 잘못하였고,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내부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실망하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 역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통진당이 밉고 싫지만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수 언론에서 너무 과하게 시간과 관심을 기울여 통진당 사태만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나친 보수 언론의 관심과 노력


현 정부와 새누리당의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작게 보이려고 애썼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연일 톱기사로 통진당을 올려 놓는 보수언론의 작태를 보면서 너무나 과하기에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나까지 비판할 필요는 없겠다하여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말한마디도 거둘 필요를 못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MBC는 파업 이후 주말 뉴스데스크 시청율 1.9%대로 추락하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백분토론이 있던 날,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는 토론 참석자, 주제 등에 관해 검색어가 올라오곤 했는데 이날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MBC 백분토론을 보지 않는다는 증거이겠지요. PD수첩, 뉴스데스크에 이어, 100분토론도 새로운 버전이 출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현재 MBC 노동조합이 만들고 있는 '파워업 PD수첩'과 '제대로 뉴스데스크'처럼 '상식적인 100분토론'이라고 따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대한민국의 토론 방송은 종말을 고했다


토론 문화가 없는 나라, 그 나라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대기업이 돈 잘버는 나라는 되었어도, 국가의 시계추는 후진국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일깨워야 하는 것 역시 건강한 언론과 토론을 통해서 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언론 상황은 암흑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