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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개신교의 구국기도회. 나라를 구한다고?

저는 개신교도 입니다. 미리 밝히는 이유는 유독 개신교에 대해 비판을 하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난의 공통점은 원색적인 단어로 불쌍한 인간 취급을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난을 한다고 하여 제 신앙이 흔들리거나 제가 쓴 글에 대한 번복은 없습니다. 물론 저 역시 사람인지라 일부 표현 상의 문제와 사실에 대한 불확신이 있는 경우는 있지만 내용 자체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추천 꾹><손바닥 꾹>



어제는 우연히 강남에 위치한 한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평소 온화한 이미지의 교회로 보수적인 개신교의 이미지에서는 많이 탈피한 교회였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교회로 실제 예배에는 70% 정도가 학생 내지는 직장인 초년생들 같아 보였습니다. 




▲ 개신교의 최근 트랜드 '구국기도회'


남의 교회에 왔다는 기분으로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보고 있는데 이런 저런 교회 소식을 알리는 내용 중에 '구국 기도회'를 하고 있다는 안내를 들었습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여기저기서 구국기도회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 역시 구국기도회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내용에 대해 알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구국기도회를 하고 있다니 이것이 요즘 개신교의 유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와서 도대체 무슨 내용의 구국기도회인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쓰는 이야기는 아닌데,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대학을 다닐때만 해도 '구국'과 '통일'은 운동권 학생들이 쓰는 매우 질 나쁜(?) 단어들이었습니다. 한 때 운동권 학생회를 알리는 깃발에 '구국'과 '통일'이 도배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운동권 학생회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이제 교회의 플랭카드에 '통일' '구국'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으니 시절이 많이 변했습니다.




▲ 언제부터 교회가 통일을 원했을까?


그런데 언제부터 개신교가 통일을 그렇게 바래왔을까요? 통일은 분단 이후에 한반도의 영원한 숙제이며 바램이었습니다. 그 방식이 평화냐 적화냐 등으로 구분되어지기는 했지만 노래말에도 있듯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념이 첨예했던 시절에는 통일을 입 밖에도 내지 않았던 개신교가 유독 요즘 들어 통일과 구국을 유행처럼 쏟아내는 것은 그리 탐탁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북한 선교에 뜻을 두었던 교회들은 예전부터 헌신해오고 준비 해왔던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형교회가 통일을 위해 구국을 말했던 것은 얼마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교회가 보기에도 위기에 처한 나라?


대형 교회가 보기에도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구국이라는 단어는 나라를 빼았겼거나 위급에 처해 있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과거 학생 운동권 중에서도 민족주의 계열에서 '구국'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 이유는 아직도 한반도가 미국의 식민지라는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남한에 성립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과잉 애국심을 '구국'이라는 단어로 표출했던 것입니다. 


철없는 학생 운동권의 역사관에서 '구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개신교에서 보는 한국의 위기는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잘 살펴보면 교회가 말하는 구국의 '국가'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고 한반도 통일을 통하여 북한동포를 구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입니다. 여기까지는 종교의 사회 참여로 충분히 인정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 개신교 사회적 문제에는 침묵, 정치적 발언에는 적극


그런데 개신교의 행태를 보면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면서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 서슴치않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율 배반을 구국이라는 허울로 치장하며 교인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불쌍히 여기며 도와야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철천지 원수이고 적이며 악마라는 관점입니다. 종교인으로서 북한을 긍율히 여긴다면 남한의 이야기를 섞어가며 '종북'이며 '좌파'와 같은 단어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을 '악마'라 여기는 자들은  종북좌파라는 양념과 총선, 대선과 같은 국거리에 자신들이 원하는 '보수국가'라는 잔칫상을 차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종교인이 아니라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맞을 것이며 정치인이 매주 교회에 서서 교인을 상대로 영혼의 양식을 주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분노를 심어주며 정권 유지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는 교인들 역시 영혼의 말씀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권력을 어떻게 하면 잘 보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초자연적인 기대를 걸고 오기에 궁합이 척척 맞는 교회와 교인의 관계가 성립될 것입니다. 



▲ 참된 교회도 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무너진 가정을 다시 세우는 교회,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 아프고 병든 자를 불쌍하게 여기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대형화되고 권력화 되면서 교회 본연의 의미와 자세를 잃어버리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자정의 기능까지 상실해 버려서 세상과 보이지 않는 담을 쌓게 된 것입니다. 


종북 좌파 운운하는 교회들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까지 간 것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교회가 온전한 것이냐 그들 역시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보수화와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진실의 균형감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 민족을 살리는 길, 올림픽에서 금메달?


어제 목사님의 기도제목에 참으로 공감할 수 없는 것이 있더군요, 이 민족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더니 갑자기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딸 수 있게 해달라라는 간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사석에서의 기도 자리도 아니고 전체 교인을 상대로한 예배에서 런던올림픽 메달이 전체 기도 제목이 된다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것인지 참으로 그 결론의 주장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안 문제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에 잘못된 지도자, 부정한 정치인들로 인한 것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형교회가 진정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가 우리 삶의 현안 문제들에는 눈을 감고 올림픽 메달에나 관심을 둔다는 것은 깨어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죽어있는 구성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 정치인들의 바램과 너무나 똑같은 런던 올림픽 메달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은 정치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새누리당과 현 정부의 바램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비리 의혹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조합이 5개월 넘게 파업을 벌이고 있는데도 오직 런던 올림픽만은 성공리에 방송을 하겠다는 MBC 사장의 소원과도 너무나 동일합니다. 결론적으로 정치적인 사람들과 목표하는 바가 똑같으면서도 자신들은 지고지순한 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기도


구국은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나라를 구해야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균형감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가 구국기도회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대상이 북한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니 종북 좌파에 집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나라가 국난에 휘말릴 때는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폭정과 간신들이 들끓었을 때가 많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외세에 침략으로 끝을 보게 되지만 국방과 민심에는 관심도 없었던 위정자들과 그 일당들이 백성을 수탈하고 비리와 부정을 저질렀기에 이미 애국심도 나라를 지킬 힘도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개신교가 깨어있다면 나라의 위정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회개하며 이에 응당하는 벌을 받을 수 있게 말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구국 기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