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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법체계에 대한 회의, 모범시민 불량사회

TV에서 '모범시민'이라는 영화를 해 주더군요. 한 밤중에 잠이 오질 않아 끝까지 보게 되었는데 참으로 황당하지만 납득이 가는 영화였습니다. 망나니같은 범죄자들에 의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10년을 치밀하게 준비하여 이와같은 범죄를 방조한 사회에 대해서 복수한다는 내용의 영화였습니다. 



<손바닥 꾹><추천 꾹>







단순히 자신의 가족에게 범죄를 저지른자들에게 국한된 복수가 아니라 범죄자들을 풀어주고 자유를 준 '법체계'에 대한 반사회적 공격이었다는 것이 남달랐고 복수 방식의 잔인함이 영화적 자극으로 다가왔습니다. 




▲ 세상은 악해져간다 왜?

세상이 악해져가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제 학창시절만 해도 '무동기 살인' 자체가 충격적 소재였습니다. 그 당시 심의 기관은 영화 내용에 이유 없이 살인을 하는 것에 대해 제재를 가했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으로는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 1992)' 개봉 당시 샤론 스톤의 관능적 연기에 가려졌지만 무동기 살인이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는 것이 커다란 논란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영화를 보면 이유없이, 유희로 사람을 살인하고 학대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모범시민 역시 복수의 대상이 광범위합니다. 꼭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다기 보다는 방관하고 방조한 사람들까지도 복수의 대상이며 '죽음'으로 결말짓습니다. 




참 정의는 가혹하군. 특히 외면당한 사람들에게 더욱 더 가혹하군  
제라드 버틀러 (클라이드 쉘튼 역)
정의는 어디 갔냐구?! 너가 다 말아먹었잖아! 
제라드 버틀러 (클라이드 쉘튼 역)

[모범시민 명대사, 출처 : 다음 영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어쩌면 이와같은 영화가 나온 것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점입니다. 20여년 전만해도 무동기 살인이 영화의 소제가 되기 어려웠던 것처럼 '법체계' 자체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사법기관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화에서 '법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소재가 떳떳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영화가 사법기관 사람들의 비리나 뒷거래를 서사적으로 그리며 풍자하고 고발하는 것이었다면 '모범시민'은 개인이 사법기관에 대한 징벌까지 감행하는 한단계 깊어진 영화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올바르다면 '모범시민' 같은 영화는 개봉하기도 힘들 것이며 개봉한다 한들 흥행에 참패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상과학 영화도 아닌 것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세계를 그린다면 관객의 호응과 관심을 얻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모범시민 영화평, 출처 : 다음 영화]




▲ '모범시민' 같은 영화가 공감을 얻는 세상

그러나 인터넷에 올라온 관람평은 대단히 의미있어 보입니다. '속 시원하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영화, 현실과 별반다르지 않다' 등의 공감대가 있는 영화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한 번 돌아볼까요?


멀리갈 필요도 없이 작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법체계의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 헌신해야할 국가정보원이 신분을 속이고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 작업을 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수사한 경찰은 국정원이 '국정원법은 위반했지만 선거법은 위반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수사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아울러 증거 은폐, 수사 외압에 대한 여러가지 구설수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 법무부장관이 법집행을 막고 있다?

바통을 이어받은 검찰은 지시문까지 써가며 정치 개입에 앞장섰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고 여기에는 황교안 법부무장관이 영장청구를 가로막고 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관련자료)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국정원법인데 이것을 위반했는데 어찌 선거법에는 저촉이 안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또한 한 나라의 법을 책임지는 장관이 사사로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법 집행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전 국정원장의 구속을 막고 있는지 이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압이 통하여 영장 청구를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검찰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같은 보통시민은 법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저 상식적인 판단 밖에는 못합니다. 하지만 법이 아무리 고매한 이상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상식' 위에 굴림할 수는 없습니다. 최고의 수재들이 법을 공부하였고 나랏님이 그 많은 인재들 중에서 특히 잘할 사람을 뽑아서 앉혀놓은 사법기관이 국민의 상식 수준에 전혀 못미치는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이것이 중대한 것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느냐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국민은 선거를 통해 나라의 지도자를 뽑습니다. 


그런데 국가정보기관이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면 이것은 대한히 잘못된 것이고 그와 같은 영향으로 만들어지는 사회는 당연히 불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민의 뜻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법체계는 불량사회를 낳고 그 사회 안에 시민들은 무척이나 불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모범시민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생존을 위해 허덕이는 처참한 생활에 만족하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