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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자족과 만족의 차이

만족은 '모자람이 없이 마음에 흡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자족은 '스스로 만족함'을 의미합니다. 만족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우 많이 쓰는 단어 중에 하나이지만 '자족'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지는 않으나 성경 구절 중에 나오는 인상 깊은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립보서 4:11)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디모데전서 6:6) 



만족은 모자람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물질적인 것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즉 소유의 의미로써 만족을 따지는 경우가 많기에 탈세속적인 단어는 아닌 듯 합니다. 불교는 욕망을 소금물과 같다고 말합니다. 욕망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소유하고 먹고 마셔도 '만족'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축복하는 시스템입니다. 욕망을 갖지 않는 성원들이 있다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불교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소금물로 축제를 벌이는 사회 구조인 것입니다. 


끊임없이 더(more)  더(more)  더(more) 를 외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족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옛날 자본주의가 싹트기 이전부터 수행자들은 속세를 벗어나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맛나고 즐거운 쾌락을 엿보다가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하물며 지금과 같이 자본주의가 최고조로 발전된 사회에서 과거의 현자들이 속세로 들어온다면 수행과 평정을 내던질 가능성은 크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속세로부터의 영향은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잠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으로는 우리가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족'이라는 스스로 만족하는 단계에 올라야 합니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자기만의 만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족과 자족은 어찌보면 동의어 같지만 이런 점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입니다. 만족 못하는 사람은 자족할 수 없지만 자족을 마음에 터득한 사람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 


자족은 지금 자기가 가진 것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입니다. 나의 집이 보잘 것 없고, 내가 가진 소유가 빈곤해도 지금 현재에 '만족'을 구하는 사람은 '자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만족함을 찾지 못하면 소유가 충족되어도 '자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자족을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 풍요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자족감'을 가진 사람을 구분해 낼 수 있고 그들에게 행복의 열쇠를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의 열쇠가 오직 '돈'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 '자족'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자기가 가진 것 중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꼼꼼히 다져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 곳에 '감사함' 이 있다면 당신은 행복으로 순항 중인 사람입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