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동굴의 비유’에서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그림자에 비친 상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하의 동굴 모양을 한 거처에서, 즉 불빛 쪽으로 향해서 길게 난 입구를 전체 동굴의 너비만큼이나 넓게 가진 그런 동굴에서 어릴 적부터 사지와 목을 결박당한 상태로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게. 그래서 이들은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앞만 보도록 되어 있고, 포박 때문에 머리를 돌릴 수도 없다네. 이들의 뒤쪽에서는 위쪽으로[가로로] 멀리에서 불빛이 타오르고 있네. 또한 이 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위쪽으로 길이 하나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담(흉장)이 세워져 있는 걸 상상해 보게. 흡사 인형극을 공연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사람들 앞에 야트막한 휘장(칸막이)이 쳐져 있어서, 이 휘장 위로 인형들을 보여 주듯 말일세.“ -플라톤 국가 7권 514a~b
“더 나아가 또한 상상해 보게나. 이 담장(흉장)을 따라 이 사람들이 온갖 인공의 물품들을, 그리고 돌이나 나무 또는 그 밖의 온갖 것을 재료로 만들어진 인물상(像)들 및 동물상들을 이 담 위로 쳐들고 지나가는 걸 말일세. 또한 이것들을 쳐들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어떤 이들은 소리를 내나, 어떤 이들은 잠자코 있을 수도 있네.” -플라톤 국가 7권 514c~515a
[글 그림 출처 : 플라톤의 국가.정체 , 역자 박종현 [서광사] 2005.04.30
인간의 인식 세계에 대한 최초의 성찰이자 가장 자세한 묘사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아닐까 싶다. 동굴의 비유는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가 불빛에 비친 환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커다란 동굴 안에 있는 인간의 인식, ‘뒤를 돌아볼 수 없도록 머리가 고정되어 있는 시선’은 빛이 비춰오는 곳을 바라볼 수 없다. 우리 뒤에는 투명한 휘장이 쳐져 있고 그 위로 사람들과 온갖 형상들이 지나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굴의 가장 안 쪽면에 비춰진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실체구나 착각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만약 휘장 위로 지나가는 사람과 형상을 조작하거나 가릴 수 있다면 동굴 안 인간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왜곡되고 은폐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동굴 안에 있는 인간은 뒤를 돌아보거나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실체의 세계’의 빛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동굴의 비유에서 말하고 있는 안과 밖, 두 세계가 이원론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굴 밖 태양 아래 인간과 사물이 있는 그대의 모습. 이것이 이데아의 세계라면 동굴 안, 빛에 비춰진 그림자만 볼 수 있는 세계가 ‘현상’의 세계인 것이다.
플라톤 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동굴 안에 있는 인간의 인식은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다. 또한 얼마든지 왜곡되고 은폐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굴 밖의 형상들은 불변의 모습이며 본질을 담고 있는 것이 된다. 플라톤은 현상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이데아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고 이것을 통해 만들어진 완벽한 인성을 ‘철인’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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