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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PD수첩 허니문 푸어의 슬픔


어제 PD수첩을 보고 있는데 아는 후배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청첩장을 주고 싶은데 우편으로 또는 방문을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 TV에서는 결혼 하자마자 빚더미에 올라버리는 기막힌 한국의 결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PD수첩 허니문푸어 빚과 결혼하다 캡처]
 

저는 대뜸 신혼집은 구했냐고 물었고, 후배는 수도권에 전셋집을 구했다고 답하더군요. 그래서는 '너는 부자다' 하고 답문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후배왈 경기도 XX는 전셋값이 아주 싸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하여튼 이 어려운 결혼 시국에 결혼하기로 결심한 후배의 용기와 능력에 축하를 보냈습니다.

'허니문 푸어' 너무 극과 극의 단어 배치인데 적절한 의미의 신조어가 될까 두렵습니다. 'Honeymoon Poor' 결혼 하고 꿈과 같은 달콤한 시기를 가르켜 허니문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가난한'의 뜻을 가진 푸어가 따라 붙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허니문 여행, 허니문 웨어, 허니문 베이비 등이 허니문과 합성어를 이루었는데 난데없이 '허니문 푸어'가 나온 이유는 극심한 경제난에 따른 결혼 비용 증가에 있습니다.

중간에 나이 드신 분의 인터뷰가 인상적입니다.

예전에는 없어도 결혼해서 살다보면 모든 것이 채워졌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생각해 보면 집값 비싸지 물가 높지 해서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허니문 푸어의 당사자들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본인이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닌데 자신과 부인이 맞벌이 하면서 너무나 부지런히 사는데 항상 쪼들리고 어려운 것을 생각해보면 이 세상이 힘든 세상인 것 같다는 푸념을 하더군요

                                    [PD수첩 허니문푸어 빚과 결혼하다 캡처] 

이런 경우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가난은 너희들이 열심히 살지 않아서 온거야' 라는 친자본주의 정서를 가진 사람들의 주장은 이미 서민들 사이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막연히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논리는 최소한의 공정한 사회적 시스템을 가진 사회에서나 먹히는 주장이지 불균형하고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그것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개그맨의 유행어가 되어 버렸지만 자신의 연봉을 숨만 쉬고 몇십년을 모아야지 집을 장만할 수 있고, 몇년을 모으면 전셋집을 구할 수 있다는 개그가 코미디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천정부지 대학 등록금 때문에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채무자 딱지를 달고 나오고, 기업들의 주장만을 받아들인 '비규정직' 확대는 고용 불안을 가지고 왔으며, 서울시의 뉴타운 공약은 집값을 투기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수출 기업 살린다는 환율 정책은 국내 물가 상승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

좋은 부모 만나서 대학 등록금 부모가 대신해 주고, 또한 부모님의 우산 아래 좋은 직장 취직하고, 결혼도 부모님이 좋은 집 장만해 주어 행복한 신혼집 장만하고, 이런 것이 가능한 부모님을 못 만난 사람들은 허니문 푸어의 슬픔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PD수첩 허니문푸어 빚과 결혼하다 캡처]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허니문 푸어의 가장 주된 요인인 집값의 경우 누구나다 거품이 끼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잘못된 거품을 치우려고 하기보다 거품을 부풀리려고 하는 탐욕스러운 정책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면서 인구가 줄어든다고 국가 차원의 출산 장려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 세상인지요?

PD수첩 허니문 푸어의 슬픔은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꾸려야 하는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잔잔하게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표현이 사회 고발로 이어질 것이구요. 여건은 갖추어주지 않으면서 애만 많이 낳으라는 무식한 표어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거, 물가, 보육 등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해결해야는 부분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시스템이 갖추어져서 '허니문 푸어'가 아닌 '허니문 해피'라는 원래의 뜻을 되찾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