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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한국 교회, 프란치시코 교황을 보라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은 어디일까요? 저는 로마 카톨릭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수적'이라는 뜻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흔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보수'의 의미와는 많이 다르니까요? 보수는 기존 질서를 지키는 의미로서 구세대의 자기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보수'는 비상식과 영악함의 표현입니다.


비상식은 밑도 끝도 없이 상대방을 몰아부치는 무식함을 근본으로 하고 영악함은 영어 단어 "wise" 의 뜻이 '현명한'으로 풀이되지만 한편으로는 '나이 들어서 영악한' 이라는 부정적 뜻이 함께 있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살다보면 나이가 들어야만 알게되는 지혜가 있으니 그것을 좋은데 쓰면 현명한 것이지만 나쁜 곳에 쓰면 교묘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wise"는 새누리당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인간들처럼 행동하다가 각종 정치현안에서 상대방을 골탕먹이는 방식을 보면 실로 영악하고 교묘하다고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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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피디아]




그런 의미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전통을 가장 충실히 고수할 것 같다는 의미에서 '보수'입니다. 이와같은 보수가 있어야 세상 무서울 것 없다고 주장하는 '진보'의 전횡(?)을 막을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보수이지만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갑니다. 다시 말하면 보수가 기존 정치 세력의 불의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수는 전통질서를 지키는 것이지 옛날 사람들의 폐단을 용인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교황에 오른 '프란치스코'의 경우 특별히 세상에 대한 정치참여를 강조하는 교회의 모습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세상의 '가난'의 문제에 집중하여 자신의 교황 즉위식에 돈을 들여 참여하지 말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기부하라고 메세제를 전했고, 교황이 된 후 첫 방문지 역시 불법 이민자들의 밀항지로 알려진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존 요한 바오로 몇세로 칭하여지던 교황의 호칭을 '프란치시코'로 바꿈으로서 청빈을 숭상하는 성인 프란치시코의 뜻을 받드는 의미를 두었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이탈리아어: San Francesco d'Assisi1182년~1226년 10월 3일)[2]


로마 가톨릭의 수도사이다. 성 프란치스코성 프란치스꼬프란시스(영어: Fransis) 등으로도 음역된다. 13세기 초에프란치스코회(프란치스코 수도회) 설립으로 세속화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개혁 운동을 이끈 교회개혁가이기도 하다. 1209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구두로 수도규칙을 인준받고, 복음의 생활양식을 기초로 살아갔는데, 지금까지로 프란치스코의 뒤를 따르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있다. 1회(작은형제회, 꼰벤투왈 프란치스코회, 카푸친 작은형제회)와 2회(클라라 수녀회), 3회(수도3회, 율수회, 재속프란치스코회)와 재속회가 있다. 그 이외의 기독교 교파들에서도 존경을 받아서, 대한 성공회의 수도원 가운데에도 성 프란시스 수도회라는 성공회수도원이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로마 가톨릭성공회의 성인이고, 세상을 떠난 10월 3일에는 추도식을, 축일인 10월 4일에는 가톨릭 교회에서 동물들을 축복하는 예식을 개최한다.[3] 흔히 갈색 수도복에 밧줄 허리띠를 매고 오상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프란치스코가 입었던 수도복은 회색이었다. 상징물은 비둘기·5개의 성흔(오상)·프란치스코회 수도복·십자가·해골이다.

{출처 위키백과}




성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13세기 당시 세속화되는 교회의 부패에 대항하여 청빈과 개혁을 외쳤던 것처럼 지금의 교황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한다'는 메세지는 세속화된 현재 교회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부를 숭상하는 교회

현재 대한민국의 교회는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부자가 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괴상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헌금이 자신의 신앙을 평가받는 주요한 수단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그 믿음의 실체는 신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에 있는 것이죠 


그래서 대형교회 목사가 수억원짜리 명차를 타고 다녀도 본인 역시 부끄러운지 모르고 교인들 또한 '믿음 좋은 우리 목사님'이라는 존경을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탐욕에 빠진 목사에 헛것을 보고 있는 잘못된 교인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은 매우 구체적으로 걷습니다. 예배 중에 헌금은 일반이고 감사, 절기, 건축, 십일조 등등 헌금으로 자신의 삶을 규정짓도록 만듭니다. 심지어 어느 교회에서는 신용카드로 헌금을 결제하는 웃지못할 헤프닝까지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교단에서는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인으로 등록시키지 않겠다는 재미있는 교회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헌금에는 매우 구체적으로 열의를 쏟는 반면 정작 예수가 강조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대해서는 매우 추상적입니다. 자기가 내는 헌금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제에 쓰이겠지라는 막연함을 가지고 돈을 내고 그 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이는 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의 어둡고 힘든 곳에서 조용히 헌신하고 봉사하기 보다는 때 되면 고아원 양로원 방문하는 등의 누구나 할 수 있는 천편일률의 선행을 벌이고 있습니다. 









▲ 헌금은 구체적, 구제는 추상적

결국 우리나라 교회는 헌금은 매우 구체적으로 걷으면서 그 돈을 가지고 도와야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는 매우 추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헌금의 반 이상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대한민국 교회가 이처럼만 해 왔다면 우리사회의 빈곤과 고통은 상당수 해결되어졌을 것입니다. 


로마의 새로운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과 행동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세속화되고 심지어는 정치화되어가는 한국 교회가 부디 교황의 가르침을 마음 속에 새겼으면 합니다. 물론 한국 교회는 로마 교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구교와 신교의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카톨릭을 폄하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교리까지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같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성인이라고 추앙받는 교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교인으로서의 진정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천주교 사제단이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시국선언을 했는데 이것 역시도 로마 교황청과의 교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교황 프란치시코의 다음의 말로 오늘 포스팅은 마칩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겐 의무(obligation)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고로, 자애(charity)가 가장 고도로 표현되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들은 반드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합니다.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왜 정치가 타락하는가? 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적 정신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가? '그들 탓'으로 돌리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무얼 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의무입니다.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그렇게 일하는 것이 바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가르치는 것도 그 중 하나죠. 그럼에도 정치적 생활은 공동선을 위한 다양한 길들 중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 예수회 학교를 방문했을 때, 정치 참여에 대한 질문에 답한 내용)  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