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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메르스 청와대 열감지기와 이승만의 한강다리 6.25 전쟁 당시의 일입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라는 말로 국민들에게 의리와 단결을 강조했던 지도자입니다. 하지만 북한국이 서울로 진격하고 남하하자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자기 먼저 피난을 갔습니다. 마치 전국민이 힘을 합쳐 북한군에 맞서 결사항전이라도 하겠다던 사람의 행동으로는 매우 부적절했으며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전쟁에서 전략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대통령의 안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본인은 끝까지 남아있고 국민 먼저 대피시키는 대통령이었다면 지금까지 존경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도망을 가려거든 국민들에게 상황을 소상히 알리고 대피 시간을 주었다면 그나마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방송으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 더보기
제주 4.3 사건, 평화공원에서 이승만을 만나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제주4.3사건 등에대해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모슬포 경찰서와 성산포 경찰서를 신설했고,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경찰과 군대에 편입시켰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입니다. 그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또한 개신교도 였다는 동질감으로, 공산주의와 맞서싸웠다는 사명감으로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특별자치시 4.3 평화공원에 가면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4.3 사건에 대한 지시 사항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위에서 "가혹하게 탄압하라"의 대상에는 결국 일반 시민도 포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조사결과 4.3 사건으로 사망한 자가 14,032명(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10.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 1,764.. 더보기
제주4.3 사건, 왜 대통령의 기록물이 중요하냐 하면 제주도에 갔다가 4.3 평화공원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일종의 기념 공원이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무고한 일반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무자비하게 학살한 우리 역사의 뼈아픈 흔적입니다. 현재도 역사적 고증은 진행되고 있고 희생자와 피해에 대한 집계가 밝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 안에는 4.3 사건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순서대로 모아놓았습니다. 4.3 사건이 처음 발발하게된 계기인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찰이 발포한 총에 주민 6명 사망, 8명이 중경상을 당한 '3.1사건' 부터 시작됩니다. 하나 하나 역사의 흔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가슴 아프고 분노가 치미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4.3 사건은 해방 이후 한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