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집에서 영화를 시청하였다. 얼마 전에 개봉했었던 '역린'이라는 작품으로 조선 말 정조 집권 초기를 소재 삼은 영화였다. 역사극을 좋아라하는 '나비오'이기에 놓치지 않고 시청하였다는데 영화의 재미보다 극중 대사 한 대목이 마음에 사묻혔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其次 致曲 : 기차는 치곡이니
(기차 치곡)
曲能有誠 誠則形 : 곡능유성 이니 성즉형 하고
(곡능유성 성즉형)
形則著 著則明 : 형즉저 하고 저즉명 하고
(형즉저 저즉명)
明則動 動則變 : 명즉동 하고 동즉변 하고
(명즉동 동즉변)
變則化 : 변즉화 하니
(변즉화)
唯天下至誠 : 유천하지성 이야
(유천하지성)
爲能化 : 위능화 니라.
(위능화)
이것은 중국 고전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중의 하나인 중용에 담겨진 문구로 영화 중에서는 못된 신하들에게 왕이 그들의 '기본' 없음을 꾸짖는 대목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언제나 상식과 대의를 겉으로는 외치지만 결국 가장 사소한 기본에는 무관심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정치인들,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하고 위기의 순간에는 기본과 상식을 이야기하면서 남을 탓하고 벌하려하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는 기본과는 거리가 먼 상식 밖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넘쳐났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정치인들, 남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는 것이 아니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한다는 이야기는 매우 사소한 이야기 같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메세지라는 것을 요즘 들어 많이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며 무엇인가 매우 작은 것이라도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다시금 과거에 매몰되려는 순간, 내 영혼에 비수를 꼿는 듯한 칼날을 보았기 때문에 나를 위해 글이 쓰고 싶어졌다.
역린 [
중용 23장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원문 문구를 다시금 살펴보고, 오래간만에 한자의 음과 뜻을 따져보면서 문장의 의미를 음미해 보았다.
한문으로 직역하자면 영화에 나왔던 대사처럼 매끄럽지는 못하다.
치곡(致曲) 이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 해석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고 誠 이 정성으로 形 이 겉이 되고 著(나타날 저)가 배어나옴으로 明 이 밝아짐으로 動이 감동으로 變이 변화로 化가 생육으로 해석되었다는 알 수 있다.
그러나 문구의 번역이 다소 다를 수 있다하더라도 궁극의 의미가 주는 메세지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다보면 남들과는 다르게 드러나게 되고 그것을 알아본 누군가의 마음에 들게되고 마음 먹은 사람이 실제로 도움을 주거나 들어서 쓰게 된다면 사회적 반응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와 사회의 시너지가 발생하게 되고 나는 이전 나에서 한단계 변화된 '나'가 되고 사회는 그 결과물로 나아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냥 쉽게 이해하자면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 이런 이야기와도 같게 느껼질 수 있겠지만 중용 23장이 더 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라'라는 메세지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도 나오는 구절로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누가복음 16:10)로 표현되어 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열심히 산 사람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불성실한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면서 산다. 그러면서 의기소침해 하고 현실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성공 못한 것은 열심히 안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우가 많다. 언제나 남 탓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정말 작은 것부터 내가 열심히 정성스럽게 했느냐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대답이 의외로 쉽지 않다.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남의 탓'을 할 수 있지만 사소하고 작은 일에 충실했었냐라는 질문에는 '누구 때문이에요', 내 탓이 아니에요'라고 대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성공하지 못함, 성과 없음이 의외로 사소한 실수, 디테일이 약했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가 정한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일에 충실했다고 말하고, 일하면서 이것저것 산만하면서도 일에 집중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자기는 열심히 했는데 기회가 없어서 운이 안 좋아서 실패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영영 만족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요즘 많은 사람들은 자기 나이대에 이룬 것이 너무 없다고 푸념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인가 이루기 어려운 사회에 살면서 뭔가 이룬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말 장난 같지만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들고 남의 떡을 크게 그리는 경향성에 살기 때문에 자기가 이룬 것을 온전히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은 매일매일 거세당하고 있다.
심지어 강연 프로그램 열풍이 불어, 이른 바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마이크를 끼고나와 자신의 삶을 나열할 때, 저들이 진정 성공한 사람들일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도대체 우리는 왜 방송사가 정해주는 성공했다는 삶을 엿보면서 따라하려하고 따라하지 못함을 자책해야 한단 말인가?
이와같은 사회에서 성공은 매우 어려운 난센스의 영역이다. 이런 어려운 개념의 성공을 매일같이 누군가 하고 있다니 현대인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것이다.
그런데 중용 23장은 성공에 대해서 매우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그저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라'고 그러면 다음 일은 알아서 물 흐르듯 흘러갈 것이라고 그 궁극의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 성공이 아니더라도 걱정말라고, 거기서 만나는 나는 이미 변하여 행복하고 내 주변도 변하게 될 것이라고,
지금 나에게 '돈'이 성공의 기준이라면 그것 역시 흘러 변하여 '돈' 이상의 기쁨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우리 인생은 매우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궁극으로 변화여 가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하지만 그 작은 것을 정성스럽게 대한다면 결코 그 끝이 작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하여튼 나는 역린 덕분에 아니 중용 23장 덕분에 잊었던 '다짐'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중용의 뜻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중간 쯤 가면 대강 잘 살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내가 아는 중용의 참 의미는 차지도 넘치지도 않는 최고 절정의 상태이다. 중용은 어설픈 중간이 아니라 인생의 절정인 것이다.
그 중용이 말하는 인생의 명대사
'지극히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라'
마음에 두고두고 새길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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