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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측은지심이 사라진 나쁜 놈 전성시대

남자 혼자 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면 장사하는 아주머니의 발빨과 흥정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달아요?" "맛있나요?"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언제나 질문을 던지고 마치 맛이 없으면 환불이라도 해줄 것처럼 '진실한' 반응에 한바구니 사들고 올 때가 있습니다. 


주변 아주머니는 연신 과일을 골랐다 놨다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흠 없고 탱탱한 과일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과일 고르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며 주변을 맴돌고 사는 아주머니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강 둘러보다 한바구니에 3000원하는 참외를 골라서 계산대에 올려놨고 저를 아래위로 쳐다보던 주인 아주머니는 제가 고른 바구니를 다시 갖다 놓고 새로운 바구니를 가져와 계산을 해 주었습니다.  


"이거 왜 그러느냐" 따질수도 있었는데 머슥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고 참외를 살펴보니 맛이 무척 좋았고 처음 제가 골랐던 것보다 갯수도 하나 더 많더군요. 마트가서 샀으면 5천원은 족히 넘었을텐데 좌판에서 사는 과일이 싸고 맛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변변치 못한 남자 손님이 부실한 과일을 골라오니 친히 실하고 알맹이도 많은 바구니로 교체해준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한 심성에 감사의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추천 꾹><손바닥 꾹>




[쌍용차 단식농성 출처 : 오마이뉴스]




▲ 두 명의 과일 장사

그리고 마트의 엄선된(?) 제품보다는 길에서 파는 과일이 훨씬 싸고 맛있다는 신념으로 퇴근길 과일 흥정을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체리였는데 검정 그릇에 담겨진 체리 한무더기가 3000원이었습니다. 시중가보다 무척 저렴하다 생각하여 바로 사기로 결정을 하였고 두 바구니를 결정하였습니다. 


주인 아줌마가 검정봉투에 체리 두바구니를 담는데 첫 바구니는 제가 고른 것을 담아주었고 두번째 바구니는 등을 돌리고 본인이 골라서 담아주더군요. 별 생각 없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과일 상태를 보고는 왜 등을 돌리고 안 보이게 담아주었는지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체리 중에 반은 거의 썩어있었습니다. 발라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부패가 심하더군요. 길에서 한무더기씩 담아 판매하는 것은 파는 사람이 신선한 것과 오래된 것을 고루 섞어서 조금은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이해하고 사는 것이고 조금 흠 있는 과일이 섞여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산 검정봉투에 담겨있던 체리는 팔 수 없는 과일이었고 버려야하는 물건이었죠. 고르고 따지는 아줌마들한테는 팔지 못하지만 저같은 멋도 모르는 남자 손님한테는 덤탱이를 씌워도 된다 생각했나 봅니다. 무척 화가 나더군요. 


그 장사하는 아줌마는 처음부터 체리를 담을 때 상중하를 구분해 두었고 깐깐하게 고르지 않거나 만만한 저같은 손님이 오면 자기의 악성 제고를 처분하는 식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급의 상품은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패가 심하여 냄새조차 맡기 힘든 팔아서는 안되는 상품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명의 과일 장사 아줌마를 보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두 분의 장사 조건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한 분은 도리어 더 좋은 상품을 골라서 담아주고 다른 분은 담는 장면을 가리면서까지 부패한 과일을 담아주었습니다. 


장사의 마인드로 따지자면 첫번째 과일 아줌마는 이미 대성하여 큰 과일 가게 사장님이라도 되어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그 아줌마 역시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 두번째 과일 장사 아줌마는 두말할 것도 없구요. 장사를 하면서 그런 심성을 가지고 있다면 장사가 하나도 되지 않아 그 자리를 떠나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분의 과일 장사 아줌마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나와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 출처 : 오마이뉴스]





▲ 맹자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 "측은지심"

사람에게는 '측은지심()' 이라는 기본 심성이 있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측은지심'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측은히 여기는 것이라 했습니다. 


인간의 선한 마음은 이 측은지심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어렵고 불쌍한 사람을 보고 가엾다는 생각이 드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선행은 시작됩니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측은지심은 사라지고 차가운 심성만이 판을 치는 듯 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기는 커녕 더욱 짓밟아서 사지로 내모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은 개인과 개인간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이 개입하여 자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밀양 송전탑 등 일련의 사태를 보면 힘 없는 소수에 대한 권력 과잉이 불러온 재앙입니다. 


이와같은 일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은 우리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시대로 가기보다는 타락한 불행의 터널로 진입하는 신호들입니다. 겉으로는 아름다고 행복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썩어들어가는 마음의 암이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개의 문' 중에서]





▲ 사람의 마음도 진화와 퇴화를 한다면

심성도 진화와 퇴화를 거듭한다면 우리 마음 속 측은지심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언제난 경제와 발전을 이야기하지만 여기서의 경제발전은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의미하는 것이지 국민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원래부터 상대가 만만하면 등을 돌리고 먹을 수 없는 물건을 담아주면서 국민과 흥정을 꾀하는 나쁜 심성의 소유자들이라 개과천선도 어려워 보입니다. 


과일 살 때 조금더 보기좋고 맛있는 상품을 고르듯 우리는 주변의 일상을 좀더 살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삶에 먹어서는 안되는 부패한 삶의 조건을 몰래 삽입하는 '측은지심'을 망각한 자들이 세상을 까맣게 까맣게 물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