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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두개의 문, 삶과 죽음 사이의 슬픈 경계

2009년 1월 20일, 용산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옥상에는 망루가 있었고 거기에는 두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 출입구인지 알 수 없었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특공대까지 투입하며 강경 진압을 하였고, 결국은 6명의 사망자를 내고 용산 참사는 역사의 아픔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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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려서부터 용산 근처에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남일당 건물 앞으로 버스로 매일 오고 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눈에 익은 건물들이고 지금도 자주 오고 가는 곳입니다. 현재는 곳곳에 세상을 저주하는 플랭카드와 흉물스러운 건물의 잔해만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 용산개발 , 땅을 가진 자에게는 축복, 없는 자에게는 저주


그곳에서 먼 발치로 바라보면 용산의 노른 자위 땅들은 개발되어 멋진 건물로 부와 가치를 뽐내고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번영의 땅 용산의 청사진을 밝히고 있는 듯 보입니다. 땅을 가진 자에게는 축복의 땅이지만 집도 절도 없는 이에게는 저주의 땅이 되어버린 용산 입니다. 상권은 이미  망했고, 그 나마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밤마다 유령이 배회하는 거리에서 주머니 짧은 손님을 기다려 봅니다. 


새로운 용산 청사진에 걸맞지 않는 이들이 이주를 모두 끝내고 나면, 이곳에 어울리는 화려함과 편의를 온몸 다해 제공할 준비를 해가며 오늘도 용산은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용산은 원래 미8군과 용산역 등이 어우러진 사창가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런 부가가치가 없던 땅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삽질을 시작하니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습니다. 원래 살던 원주민은 돈도 없으려니와 정보도 없었습니다. 사창가의 벌건 불빛이 보이는 동네를 누구든 빨리 떠나고 싶어 했고, 아이들은 그 곳에 산다는 것을 남들에게 말하기 꺼려했습니다. 


그런 동네가 용이 되어 버렸으니 누군가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겠습니까? 하지만 거의가 외지인들의 몫이었습니다. 아니면 미리 개발 계획을 알고 헐값에 사들인 부동산 투기꾼들에게 원주민들의 인내의 댓가는 한순간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습니다. 억울해 하는 사람도 많았고 허탈해서 주저 앉는 사람도 많았겠지요 


그나마 장사는 어느 정도 되던 곳이었습니다. 버스터미날은 사라졌지만 지하철이 두개나 다녔고 한강대교 북단에 위치한 지리적 요소가 많은 유동 인구를 갖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에게 나쁘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도시 하층민이 아니라 중간 계층 정도되는 먹고 살만한 서민들이었습니다. 




▲ 장사를 하던 곳에서 떠나라


그런 그들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생겨났습니다. 개발을 하겠으니 건물에서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상권 구조인 권리금에 대한 인정이 생각같지 않았고, 오래 해 오던 장사를 제대로된 이주 대책 없이 다른 곳에 하라는 것은 상인들이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개발은 맡은 건설사는 시행사다 시공사다 해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계산하고 있지만 거기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는 서민들은 배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영화 '두개의 문' 중에서]




그래서 그들은 불만에 찬 목소리를 내며 건물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에 올라간 사람 중에는 70세 먹은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진지해 보였겠지만 그 전날만 해도 주방에서 식당에서 음식 만들고 접시 나르던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가 높았다고 한들, 그들이 불만을 표시하는 방법이 옥상 위 망루였다고 한 들, 특전사 출신의 대테러 임무가 주요한 경찰특공대가 바로 투입되어 사람들을 가두어 두고 진압했다는 사실은 상식 밖에 일입니다. 이것은 법과 질서 운운한다 하여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와 같은 시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불손한 마음을 품은 자들은 그들을 자꾸 '전철연'이라고 부릅니다. '전국 철거인 연합' 의 줄임말인데 전철연이라고 부르면 어떤 정치 조직 같고 마치 종북 세력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용산에 음식점하고 주방에서 일하던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습니다. 저는 만약 그런 일이 저한테 일어난다면 저 역시 옥상으로 올라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70세 노인을 경찰특공대가 진압?

 

70세 먹은 할아버지도 울분을 못 참고 올라갔던 망루를 젊은 저가 마다하기에 창피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특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사는 삶의 터전이 위협 받을 때 행동하게 됩니다. 그것은 당연한 사람의 도리입니다. 그들이 화염병을 들었다고 폭도며 테러범이라고 모는 사람들은 삶의 위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삶의 위협을 받기 보다 남에게 위협을 주는 존재일 가능성이 큽니다. 


80년 광주에서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고 그 때 참여했던 군인들은 지금도 정신적 충격에 빠져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명령에 의해서건 아니건 간에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죄책감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극한 공포 속에서 저질러진 일이라면 정신적으로 깊은 트라우마에 빠져 어둠의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 진압 명령을 내린 자 외에는 모두가 피해자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라고 기억되는 사건에는 명령을 내린 자 외에 모두가 피해자 입니다. 농성자들과 그의 가족들, 진압 경찰들과 그 가족들 모두가 알게 모르게 용산의 기억 속에 삶의 많은 시간을 고통 속에 살 가능성이 큽니다. 오직 명령을 내리고  용산 참사를 통해 이익을 보려 했던 자들만 양심이 마비되어 떳떳이 고개 쳐들고 살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거짓말 탐지기에 넣고 거짓을 말해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성이 말살된 냉혈한들이기 때문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고 인간의 따뜻한 체온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세한 신체의 반응을 감지하는 거짓말 탐지기도 이들의 마음을 꿰뚫수 없는 것입니다. 


용산 참사는 농성자들의 가족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죽은 것도 억울한 데 그들은 범죄자로 낙인 찍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들이 왜 거기에 올라갔고, 올라간지 하루만에 경찰특공대가 콘테이너에 들어가 악질 테러범을 진압하듯 때려 잡은 것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관용이 불러일으킨 용산참사


법과 질서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존재 이유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이고 국가의 근간은 바로 국민입니다. 국민을 잘 지키고 돌보라는 법과 질서를 아무데나 들이대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관용'의 원칙까지 들고 나왔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용삼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70세 먹은 할아버지가 망루에 올라갔다면 최소한 이야기는 한번 들어봤어야 합니다.그 나이의 어르신이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망루에 화염병이 있는 곳을 마다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무관용'은 관용적 대화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농성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정도 했으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법과 질서 이전에 사람된 도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맞딱드린 상대는 국가 테러범을 잡는 경찰특공대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이거 일이 잘못되는구나'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상식적인 공권력이었다면 협상이라는 것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늘에서 본 것은 경찰특공대를 채운 콘테이너 박스였습니다. 사람들은 순간에 흥분하게 됩니다. '이쯤되면 막하자는 것이지요' 대통령이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검사들을 나무라는 멘트가 아닙니다. 


밑에서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하늘에서 경찰특공대가 내려온다면 이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굴복했을 수 있고 살려달라고 빌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의 사건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망루 안에 있었던 사건은 오직 돌아가신 분들과 경찰들만이 정확히 알 것입니다. 전문 채증팀이 카메라와 비디오를 계속 찍어댔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안 찍었다고 합니다. 이런 무능한 채증팀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준다는 것이 참으로 통탄스러울 따름입니다.




▲ 두개의 문, 삶과 죽음의 슬픈 경계


용삼참사 2009년 1월 20일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는 두개의 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 문에 들어가서 싸늘한 죽음으로 돌아나왔고 다른 이들은 살아서 나왔지만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의 문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책임을 법과 질서에 맞게 다시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선진국은 G20의장국이 되어서도 아니고,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서도 아니며,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서도 아닙니다. 억울한 사람들이 적을수록 더 선진화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용산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두개의 문이 진실과 거짓 사이의 촘촘한 경계를 넘나들며 수면 위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반드시 죄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죽어서라도 그 값은 치루게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용산 참사의 한맺힌 영혼들이 이승과 저승이라는 두개의 문을 넘나들며 피눈물을 흘리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