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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임산부 지하철 타기 무서운 세상

지하철은 우리 생활에 큰 도움을 줍니다. 아마도 지하철이 없었다면 대부분의 도시가 제대로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특히 서울의 지하철은 사람도 많고 가는 곳도 많습니다. 


저는 경기도에 살고 가끔 서울로 사람을 만나러 나갈 때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앉을 자리도 있고 따로 책과 음악도 즐길 수 있어서 이렇게 좋은 교통 수단이 또 있나 싶습니다. 그런데 임신한 제 아내는 지하철 타기를 두려워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노약자석에 마음놓고 앉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임산부의 경우 아기의 체중까지 떠 안아야 하기 때문에 오래 서있기 힘들고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불상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임산부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교통수단에 오르면 자리를 양보해 줍니다. 


그래서 노약자석에는 노인, 장애우, 유아, 임산부에 대한 표시를 해 놓고 배려 받을 수 있게 해 놓은 것입니다.   



[지하철 노약자 배려석]




▲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봉변당한 이상한 청년

그런데 오늘 참으로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약간 행동이 온전치 못한 청년(귀에 이어폰을 끼고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히죽히죽 웃는 청년이었다) 하나가 노약자 석에 앉았더니 주변에 노인분들이 그 청년을 대놓고 나무라고 하더니 마침내는 그 중 노인 한명이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나'라고 말하고는 '너같은 사람(청년)은 여기 오면 안되고 저쪽 자리로 가라'고 호통을 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약간 행동이 불안했던 청년은 냉큼 일어나서 막 서성이더니 다음 정거장에서 그냥 내려버리기는 했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 청년이 마치 큰 잘못이나 한 것처럼 노인분들한테 둘러쌓여 나무람을 받을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청년도 자세히 따져보면 보호받을 수준의 온전치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탔던 지하철에서는 단지 외적인 모습으로만 판단하여 젊은이가 노약자석에 앉았다는 것에 대해 구별지어졌던 것입니다. 




[지하철 일부 좌석에는 임산부가 배려받지 못 할 것을 염려하여 '임산부 먼저'라는 표지까지 있습니다]





▲ 노약자 배려석이지 노약자 전용석이 아니다 

물론 저는 노약자석에 앉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도 노약자석이 내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약자 배려석은 그야말로 '배려석'이지 누가 앉으라 말라 할 개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리가 비었으면 앉아 있을 수도 있고 노약자가 오면 양보하는 것이 올바른 운영이지 노약자 무서워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은 올바른 배려도 또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노약자 배려석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 '임산부' 입니다. 임신 초기의 경우 외적으로 잘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임신 유무를 외적으로 판단받기 힘듭니다. 특히 임신후 3개월까지 유산의 위험이 가장 높은 때이므로 집중적으로 배려받아야 하는 시기인데 대중교통 안에서 배려석 이용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제 아내의 경우도 임신부임에도 불구하고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낭패를 당할 뻔 한 경우가 있습니다. 아래는 제 아내의 실제 체험담입니다. 


  



드디어. 임산부가 되면 한번쯤은 반드시 마주친다는 '지하철 어르신'을 만나게 되었다. 


오늘따라 혼잡한 경의선에서 두정거장을 서 있다가 노약자석에 자리가 하나 나길래 눈치를 보다 주춤주춤 앉았다. 5분쯤 지나서일까 문이 열리고 50대 후반 60대 초반의 아저씨가 들어오자마자 곧장 나를 쳐다보곤 다짜고짜 지하철이쩌렁쩌렁 울려라


"아니 ~~ 왜 젊으신 양반이 노약자석에 앉아있어 그래?!"


호통을 치는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지하철의 모든 시선들이 나를 향해 쏟아졌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 사회공개적인 모욕감에 휩쌓였다. 아무말도 못하고 아저씨를 쳐다보던 나는 내 옆에서 서계시던 할머니와 남자분이 동시다발로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역호통을 쳐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아니 임산부니까 앉아있죠 왜 앉아있기는요!"


시선은 다시 되려 그 아저씨에게 쏠렸고 지하철 속에서의 적막감을 견디지 못한채 그는 다음 정거장에서 줄행랑치듯 내려버렸다.


나는 그나마 어쩌다 한번 타게 된 지하철에서 겪는 이런 일을 어쩔수없이 매일 이용해야하는 임산부들은 얼마나 자주 겪어야 하는 건지 걱정이 앞선다. 


한국에 들어와서 정착하게 된지 이제 4년차 접어들기 시작했다. 아직 '진정한'노약자와 장애인들에 대한 의식조차 희미한 대한민국 ...뭐가 문제일까? 




이것은 제 아내의 실제 경험담인데 놀라운 사실은 다른 임산부들도 위의 '지하철 어르신'을 한 번씩은 만났다는 경험담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아내는 아주 다행히 승객이 많지 않은 경우였고 주변에 같은 성향의 노인분들이 집단으로 앉아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변호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 아내가 오늘 제가 탄 지하철 안에 앉아 있었더라면 임신부라는 변명 한번 못해보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제가 본 구역에는 대부분 노인분들이었고 서로 혀를 차며 그 이상한 젊은이를 나무라는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윽박지름만 남은 사회 

왜 우리사회가 이렇게 거칠어지고 자연스러움이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윗사람을 공경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하는 것인데 도리어 지하철의 노약자석이 자신들의 전용석인 것 마냥 유세를 떠는 노인들은 '공경'의 대상은 아닌 듯 싶습니다.  


어찌보면 사실 모두가 피해자들인 것이죠. 탐욕스러운 권력자들 덕분에 지역으로, 이념으로, 이제는 세대별로 서로가 질시하고 반목하게 만드는 천박한 정치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걱정만 하지 말고 제대로된 정부라면 사람이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만드는데 관심을 갖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무식이 유식을 이기는 세상, 임산부가 지하철 타기 무서운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