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났습니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바쁜 일상 중에 못 나눴던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꿀같은 휴식 기간이었어야 하는데 지나고 보니 모든 이에게 추석 연휴가 꼭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사 음식을 마련해야 하는 주부와 취업 준비 중인 청년들에게는 매우 곤욕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청년 실업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취준생에게는 아래와 같은 말들이 추석 기간 동안 가장 듣기 싫은잔소리들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혹시나 가족 모임에서 취준생들에게는 본인이 취업 여부를 밝히기 전에는 '취업 했니?'라는 질문을
자제해야 할 듯 합니다. 이처럼 취업하기 힘드니 연애하기도 힘들고 결혼은 더더욱 묘연한 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요즘 취업운, 연애운, 결혼운 등을 보는 젊은
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집을 드나드는데 마음의 제약이 있는 분들이 있으니 바로 개신교 크리스천들입니다. 크리스
천은 유일신 사상으로 절대자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천사를 제외한 모든 영은 귀신
으로 규정하여 다른 영혼의 힘을 빌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이단'의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점 운세 사주 토정비결 등의 행위들은 우리나라 토속 민속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미래의 길흉
화복을 미리 아는데 촛점이 맞춰지다 보니 크리스천의 신앙과 대치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 점집을 안 가는 것이 그들만의 율법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정말로 점을 보면 안될까요?"
이것은 개신교가 개인의 자유 의지보다 율법 또는 목회 지도자의 권위를 중시한다면 개인 신앙이 아니
라 누군가 정해놓은 규율에 따라 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사 모두가 정해진 규칙과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귀에는 대형 교회 권사님들이 자신의 자녀들이 시집 장가 갈때는 유명
점쟁이의 궁합을 본다는 소문 또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점집찾는 기독교인 많아…인터넷엔 젊은 고객 - LA 중앙일보
그러나 상당수 크리스천들은 점집 드나드는 것을 꺼려하고 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하나님
이 아닌 다른 힘을 빌려 알아보고 의지하는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무조건
현실에만 맹목하고 미래 예측은 불경한 것이라고만 보았을까요?
성경에서는 점치는 행위를 귀신들 것과 동일 시 합니다. 결국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 어디에서 왔냐가
문제인데 그것이 악한 영, 귀신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는 점치는 일을 불경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사도행전 16:16]
위의 구절에서 보면 성경에서는 점치는 행위를 귀신들린 것과 동일 시 합니다. 결국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 어디 에서 왔냐가 문제인데 그것이 악한 영, 귀신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는 점치는 일
을 불경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이 쓰여진 고대는 과학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문학, 기
상관측, 자연관찰 도구가 매우 미비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각종 토템적 신앙과 미신이 민간 신앙
을 지배했고 연약한 인간이 크게 의존했던 영역은 기복과 미래 예측 (점치는 행위)이었기 때문에 유일
신을 믿는 개신교에서 점치는 행위는 곧 이단의 행위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시대에 천문학에 조예가 깊은 자가 나타나 일식과 월식을 예측했던라면 이 역시도
미래를 점친 죄로(?) 불경한 자로 낙인찍혔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 현상에 기반한 미래 예측과 자
신이 부리는 영을 불러 미래를 점치는 것이 구분되어져야 할 텐데 고대 개신교에서는 이와같은
작업이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런데 자연과학이든 뭐든지 간에 '미래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인간으로서는 불경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개신교도가 있다면 지금의 논리과정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참 신앙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 또한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인 (종교는 상식적이 않다) 분들에게는 현대의 점치는 영역이 두가지로 구분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하나는 주역과 명리학에 기반한 통계학으로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인간
의 논리로 점치는 것과 한국에서는 신내림으로 대표되는 신점으로 나눠진다는 것입니다.
전자의 주역과 명리학은 철저히 인간의 정성과 논리를 가지고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것이고 신점은
그야말로 '귀신'의 힘을 빌려 미래를 보려는 것입니다. "'미래를 알려는 자체'가 신에게 불경한 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천에게는 전자나 후자 모두가 비율법적 행위일 것입니다. 하지만 수 많은
인생의 궤적들을 수와 형상으로 풀이하여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반성하여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전자의 주역과 명리학은 그리 나쁜 행위만은 아닐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신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행복한 일이겠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고대부터 내려오는 주역과 명리학과
같은 '빅데이타'의 궤적이 있다면 이것을 거울삼아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현재를 반성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개입하느냐의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가 불경한 것인지
아닌지는 판단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역 또는 명리학을 공부하고 뜻을 풀이하는 것이 신점처럼
귀신과 교접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은 구분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맹목적인 크리스천보다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노력하는 행위가 '신'이 보기에 불경하기만
한 '인간'의 모습이라면 우리가 믿으려는 하나님의 선하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깊은 사색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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