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막을 내렸고 그 여운은 아직까지도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이 양국 시간 통일과 같은 그이후의 후속조치를 약속대로 잘 진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미정상회담은 5월 22일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확정지었고 한북미 삼자 외교가 주목받는 가운데 유독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이 오리무중입니다. 

오늘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미정상회담의 '장소와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이미 결정된 것이 있는 듯 했지만 정작 그 내용을 밝히지는 않고 있어 궁금증만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국내외 많은 언론이 북미정상회담의 장소와 시간에 대해 추측만 내놓고 있을 뿐 정확한 팩트에 다가갈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민간인이 의견을 내놨는데 그럴듯한 내용이라 소개해 봅니다. 

유튜브 채널 '봉쥬르헬로'의 미국남자 레스는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미국 내 의견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미국 내 북미정상에 대한 의견, 첫 번째는 트럼프의 계속된 강공에 김정은 위원장이 마음을 열었다는 트럼프 우세설이 그 하나이고 두 번째가 재미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를 향해 이렇게 마음을 열고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끄는 가운데 트럼프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를 만나자마자 모든 개방 행위를 닫아버린다면 온 세계가 결국 트럼프가 무능해서 세상으로 나온 김정은을 다시 자기 방으로 밀어넣었다는 여론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결국 트럼프는 김정은의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하는 (?) 다시 말하면 김정은이 토라지게 만들면 안되는 외통수에 빠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장소와 일정 등에 관해 확실한 의견을 못 내놓고 수 싸움에 들어갔다는 평입니다. 

김정은이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 폐쇄의 길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트럼프의 역할인데 그렇다면 기업가 정신으로 똘똘 뭉친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많이 얻을 수 없는 형국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요즘 부풀어 오른 노벨상의 염원도 요원해지는 것이죠.


후자의 경우가 맞는 것이라면 정말로 김정은 위원장 아니 북한의 외교술은 대단한 지략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주거니 받거니 그리고 결코 상대가 자신을 함부로 못하게 만드는 전술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북한과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 모두 평화의 길로 접어들어 왕래도 자유롭고 무엇보다 서민이 잘 살 수 있는 경제 번영의 국가가 됐으면 합니다.  



 









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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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보면 이것이 한국 방송인지 해외 방송인지 헛갈릴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출연자들이 서양인, 아랍인, 아시아인 등 다양하게 출연하기 때문입니다.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데요 외국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생각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고 특히 문화는 차이만 존재할 뿐 흔히 좋고 나쁘고의 '수준' 차이는 약간의 허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예전에 한국이 보신탕 먹는 것을 무척이나 야만적이고 수준 낮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따지고 보면 그런 것을 비난하는 서양인들에게 개의 의미와 우리나라에서 그 옛날 개가 차지하는 비중 차이였다는 생각이듭니다. 서양에서 개는 수렵과 가축을 지키는 필수 요소 였지만 한국과 같은 농경사회에서 개의 비중은 크지 않았기에 먹을 수도 있었고 현대로 와서 개가 인생의 동반자로 승격되면서 잡아 먹는 것에 대한 반론이 커졌을 뿐입니다. 


결국 시대와 장소에 따른 인식과 필요에 따라 식용과 비식용이 나뉘었을 뿐 문화 수준 차이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인에게 한우를 애식하는 한국인들은 야만인으로 보이겠지만 우리는 소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TV 미디어의 글로벌화는 우리에게 많은 흥미와 깨달음을 줍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튜브가 있는데요 외국인이 출연하는 채널이 특히 인기가 많습니다. 


[봉쥬르헬로 출연자 오른쪽 프랑스청년 마크, 왼쪽 미국남자 레스]



오늘은 그 중에서 '봉쥬르헬로' 라는 채널의 에피소드를 보겠는데요 일반적으로 유럽하면 대단히 선진적이고 이성적인 국가들이라고 생각하고 저 역시 은근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봉쥬르헬로는 프랑스청년 마크와 미국남자 레스가 프랑스 미국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 비교하고 한국 생활 좌충우돌 도전기를 담고 있는 채널인데요 이 에피소드 중에서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 중에서 한국의 미세먼지 이유가 고등어를 굽기 때문이라는 말과 상통하는 대목을 발견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야기는 저 멀리 1986년에 있었던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파 때로 흘러갑니다. 레스(미국남자)가 한국 대통령이 미세먼지의 원인으로 고등어 구이를 지목했었다고 말하자 마크(프랑스청년)는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너무나 합리적이지 않고 말도 안되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크는 기억을 하나 끄집어 냅니다. 자기 나라 프랑스에서 있었던 웃지 못할 황당한 주장, 그것이 바로 체르노빌인데요 당시 방사능 오염이 전파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프랑스 정부가 말하길 체르노빌 지역의 방사능 구름이 프랑스 국경에게 딱 멈췄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봉쥬르헬로 출연자 오른쪽 프랑스청년 마크, 왼쪽 미국남자 레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인데요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 일부가 처음에 고등어 미세먼지 원인설을 믿었던 것처럼 프랑스 국민들도 이 주장을 그대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웃기지요? 결국 정부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터무니 없는 주장들도 언론이 잘 발표만 하면 국민들의 비판을 무마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봉쥬르헬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각 국가의 국민 상대 사기극은 우리나라나 유럽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에 대한 좀더 너그러운 세계관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것은 천하고 서양은 것은 수준 높다" 또는 "우리 것만 맞고 외국 것은 틀리다" 같은 극단적인 문화인식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길 희망합니다. 


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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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펜슬이 하나 굴러내려왔다. 여성용 펜슬이라 그런지 '토로롱' 가벼운 쇠소리를 내면서 굴렀다.  하여 자던 사람까지 자기 신발 앞을 쳐다보게 되었다.


이 돌발상황 덕분에 좌석에 있던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었다. 허리를 굽혀 주워주려는 사람, 마음은 있으되 몸이 따르지 않는 사람, 신발로 막아 진행을 멈추게 한 사람  등 펜슬을 흘린 여성의 무안함을 달래주려는 이가 꽤 있었는가 하면 보고도 못 본 체하는 사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 등이 있었다. 


내가 굴러가는 펜슬 하나를 놓고 인격까지 들먹이는 이유는 바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 때문이다. 자기 주변이야 어떠하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사람들... 대통령이 나발을 불던 칼춤을 추던 나만 회오리에 휘말리지 않으면 된다는 이들...


이들의 무관심이 최순실을, 삼성을, 박근혜를 만들었다.이들의 이기심에 공권력이 영장을 기각하고 탄핵을 불안케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라!

'앞으로 당신들도 뭔가 떨어뜨릴 일이 반드시 생긴다'



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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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yunjai.net BlogIcon 분 도 2017.07.13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심해야 할 글이네요

  2. 역린 2017.12.30 09: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린 명대사 검색하다가 들어왔습니다.
    최근 글들이 없어서 아쉬운데,,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많네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출근길 지하철이 만원인 것은 마찬가지다. 몸과 몸이 섞이며 밀치고 받치는 압력, 아찔할 정도로 붐비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옛날 지하철 안에서는 서로 평화로왔던 것 같다. 비슷한 동네, 같은 지하철이라는 '느슨한 연대감'이 불편함을 감수케한 것이다.

지금의 지하철은 일촉즉발의 시한폭탄같다. '좀만 더 밀면 지옥 끝까지 찾아가 부셔버리겠어' 얼굴에 이미 써있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도 한판 사단이 일어났다. "왜 밀어" 에서 시작한 말다툼이 "ㅆㅂㄴ아, 혼자서 택시타고 가"라는 극한 상황까지 갔다. 하지만 둘다 가여운 중생인 이유가 서로 주먹질을 하고 활극을 펼칠 만한 한뼘 공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기세등등함은 온데간데 없고 이내 '덜컹덜컹' 지하철 소리에 주도권을 넘긴다.

지금의 만원 지하철은 모두가 혼자다. '느슨한 연대'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나랑 같은 노선, 동일한 시간 때에 출퇴근하는 인간 사람이 아니라 나를 불편케하는 물건 로보트일 뿐이다. 그러니 그토록 화가 날 수 밖에...

우리는 이렇게 또 하루를 시작한다.



아무리 지하철이 만원이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니니...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

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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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SO 2016.11.15 1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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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3.05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추석 연휴가 끝났습니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바쁜 일상 중에 못 나눴던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꿀같은 휴식 기간이었어야 하는데 지나고 보니 모든 이에게 추석 연휴가 꼭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사 음식을 마련해야 하는 주부와 취업 준비 중인 청년들에게는 매우 곤욕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청년 실업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취준생에게는 아래와 같은 말들이 추석 기간 동안 가장 듣기 싫은잔소리들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혹시나 가족 모임에서 취준생들에게는 본인이 취업 여부를 밝히기 전에는 '취업 했니?'라는 질문을 

자제해야 할 듯 합니다. 이처럼 취업하기 힘드니 연애하기도 힘들고 결혼은 더더욱 묘연한 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요즘 취업운, 연애운, 결혼운 등을 보는 젊은

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집을 드나드는데 마음의 제약이 있는 분들이 있으니 바로 개신교 크리스천들입니다. 크리스

천은 유일신 사상으로 절대자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천사를 제외한 모든 영은 귀신

으로 규정하여 다른 영혼의 힘을 빌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이단'의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점 운세 사주 토정비결 등의 행위들은 우리나라 토속 민속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미래의 길흉

화복을 미리 아는데 촛점이 맞춰지다 보니 크리스천의 신앙과 대치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 점집을 안 가는 것이 그들만의 율법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정말로 점을 보면 안될까요?"    

  


이것은 개신교가 개인의 자유 의지보다 율법 또는 목회 지도자의 권위를 중시한다면 개인 신앙이 아니

라 누군가 정해놓은 규율에 따라 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사 모두가 정해진 규칙과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귀에는 대형 교회 권사님들이 자신의 자녀들이 시집 장가 갈때는 유명 

점쟁이의 궁합을 본다는 소문 또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 크리스천들은 점집 드나드는 것을 꺼려하고 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하나님

이 아닌 다른 힘을 빌려 알아보고 의지하는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무조건

현실에만 맹목하고 미래 예측은 불경한 것이라고만 보았을까요?







성경에서는 점치는 행위를 귀신들 것과 동일 시 합니다. 결국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 어디에서 왔냐가 

제인데 그것이 악한 영, 귀신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는 점치는 일을 불경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사도행전 16:16]



위의 구절에서 보면 성경에서는 점치는 행위를 귀신들린 것과 동일 시 합니다. 결국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 어디 에서 왔냐가 문제인데 그것이 악한 영, 귀신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는 점치는 일

을 불경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이 쓰여진 고대는 과학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문학, 기

상관측, 자연관찰 도구가 매우 미비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각종 토템적 신앙과 미신이 민간 신앙

을 지배했고 연약한 인간이 크게 의존했던 영역은 기복과 미래 예측 (점치는 행위)이었기 때문에 유일

신을 믿는 개신교에서 점치는 행위는 곧 이단의 행위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시대에 천문학에 조예가 깊은 자가 나타나 일식과 월식을 예측했던라면 이 역시도 

미래를 점친 죄로(?) 불경한 자로 낙인찍혔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 현상에 기반한 미래 예측과 자

신이 부리는 영을 불러 미래를 점치는 것이 구분되어져야 할 텐데 고대 개신교에서는 이와같은 

작업이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런데 자연과학이든 뭐든지 간에 '미래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인간으로서는 불경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개신교도가 있다면 지금의 논리과정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참 신앙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 또한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인 (종교는 상식적이 않다) 분들에게는 현대의 점치는 영역이 두가지로 구분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하나는 주역과 명리학에 기반한 통계학으로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인간

의 논리로 점치는 것과 한국에서는 신내림으로 대표되는 신점으로 나눠진다는 것입니다. 



전자의 주역과 명리학은 철저히 인간의 정성과 논리를 가지고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것이고 신점은 

그야말로 '귀신'의 힘을 빌려 미래를 보려는 것입니다. "'미래를 알려는 자체'가 신에게 불경한 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천에게는 전자나 후자 모두가 비율법적 행위일 것입니다. 하지만 수 많은 

인생의 궤적들을 수와 형상으로 풀이하여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반성하여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전자의 주역과 명리학은 그리 나쁜 행위만은 아닐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신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행복한 일이겠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고대부터 내려오는 주역과 명리학과

같은 '빅데이타'의 궤적이 있다면 이것을 거울삼아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현재를 반성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개입하느냐의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가 불경한 것인지

아닌지는 판단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역 또는 명리학을 공부하고 뜻을 풀이하는 것이 신점처럼 

귀신과 교접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은 구분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맹목적인 크리스천보다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노력하는 행위가 '신'이 보기에 불경하기만

한 '인간'의 모습이라면 우리가 믿으려는 하나님의 선하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깊은 사색이 

필요할 것입니다.  


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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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reenhrp.tistory.com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5.10.01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만나는 글이라 더 반갑네요^^,
    저도 한때 기독교였던터라 미신관련해서 아주 맹목적이였죠.
    이런 글이 필요한듯 싶어요. 물론..맹신할때는 아무말도 안들린다는데 문제가 있지만요.

    앗! 너무 좋은 소식이더군요. 축하해요. 당연히 바빴겠어요.
    제가..방명록글을 다시보니..딱히..감동적이지는 않던데.. ㅎ
    그래도 방명록글덕에 좋은소식 알았응게..됬지요 뭐.

    앗.. 김규항씨의 '예수전'이라는 책이 있어요. 제가 얼마전에 읽었는데요. 너무 괜찮았어요.
    읽어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 제가 종교는 떠났지만 '예수'는 진짜 존경하거든요. ㅎ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삶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누가복음 16장 10절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때 

누군가는 우리를 보고 있다. 

누가 우리를 보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이기기 위해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온 맘 다해..

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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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5.06.25 0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린 영화에서 나온 대사.기억합니다
    오늘 또 새기고 갑니다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젊었을 때는 자기가 절대 노인이 될 리 없다는 듯이 행동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들고 늙는다. 유럽과 같은 복지 선진국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많은 세금을 낸 혜택을 누리며 살지만 그 외에 국가에서 노후는 고통인 경우가 많다.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 가토 게이지 지음]




▲ 노인 빈곤율, 자살율 OECD 최고

그 예는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과 자살율이 OECD 국가에서 1등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넉넉치 못한 삶이 더욱 더 거친 생업 현장으로 내몰지만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들을 돌봐줄 친절한 정부 또한 없다. 그래서 도심 한 복판에 악을 쓰며 빨갱이 척결을 위치며 나랏일이라고 하면 두발 벗고 용돈 챙기는 노인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들은 애국을 외치지만 받아든 봉투에서 허탈과 자괴감으로 동네 싸구려 술집이 메어터지는 것을 보면 이 현상이 이해될 것이다. 


60세 이상만 고용한다는 일본의 가토 제작소는 일본 기후현 나카쓰가와에 자리잡고 있다. 이 회사는 1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장인 정신의 공장이며 탄탄한 기술력으로 연속 순익을 기록하는 알짜 회사이다. 이 회사의 60세 이상 고용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담은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는  가토 제작소의 사장 가토 게이지가 직접 쓴 이야기이다.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 처음 부분. 가토 게이지 지음]




▲ 기존 직원 4일 근무, 실버 직원 주말 또는 3일 근무 

60세 이상 실버 고용의 형태는 주중에는 기존 직원 평균 (나이 39세) 주말에는 60세 이상 실버 직원을 채용하여 5일근무를 7일 근무제로 바꾸면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가토 제작소는 2000년 당시 15억엔이던 매출이 2012년 40억엔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출처 기사)


인구 고령화 사회에서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 와 같이 근무일 수를 5일 근무, 2일 휴무에서 4일, 3일 근무로 전환하면 새로운 일자리기 창출되고 업무 부담이 낮아져 실버 세대 취업을 높일 수 있다. 4일/3일 근무는 일본의 지방 도시, 작은 기업에서만 이루어질 프로젝트가 아니라 우리도 빨리 도입하여 시행할 일이다. 


우리나라는 노인의 빈곤율 뿐만 아니라 청년 실업율 또한 고공행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같은 근무일 수 변화에 따른 유연근무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그러나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의 책처럼 근무일 공유가 생각처럼 쉬울 리 없다.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 가토제작소 구인 광고]




▲ 4/3 근무 일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60세 이상만 근무합니다' 와 같이 기존 직원과 실버 직원으로 나누는 주중 근무, 주말 근무로의 전환은 일본이었기 때문에 쉽고 가능했다는 점은 우리가 곱씹어야 한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대형유통사가 성공하지 못한 소수의 나라 중에 하나이다. 일본은 지역 상권에 대한 인정과 공동체에 대한 신의가 있는 나라이다. 작은 규모의 동네 수퍼 또는 편의점이 유통을 담당하고 있지 우리나라 처럼 주말이면 붐벼 터지는 대형마트는 득세하지 못했다. 


일본인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또한 부지런한 민족이다. 그리고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 의 배경이 도시가 아니라 지방이었다는 점이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돕는 요소였을 것이다. 지방은 도시보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선택의 여지가 적다. 그리하여 괜찮은 고용 형태가 있다면 쏠림 현상과 안정적 유지가 도시보다는 수월했을 것이다. 




▲ 근무 형태를 바꾼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가토제작소가 일본 번영의 핵심인 부품회사라는 점도 굉장한 이점이었다. 이와같은 변화는 책 내용에서도 나오지만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한 사업이다. 그 노력의 주체는 사장, 기존 직원, 실버 직원과 정부 4자 모두에게 해당되며 비용은 시설 투자 및 서비스 부분에 많은 소요가 있었다. 


가토 제작소의 경우 가토 게이지 사장이 실버 쉐어링이 생겨난 2000년 부터 단 하루도 쉬어보지 못했다는 점(사장은 4일 기존 직원 때와 3일 실버 직원 때도 모두 출근했다고 한다), '사장은 일이 취미'여야 한다는 좌우명으로 보았을 때 사장의 역할을 120% 완수하였고 비용은 일본의 여러가지 기업 지원 제도를 십분 활용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 


만약 골프 좋아하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님이 3/4일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휴일 없는 업무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 대기업에는 후하지만 중소기업에는 인색한 정부가 3/4 근무에 대한 지원책을 얼마나 마련해 줄 지가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가 성공할 수 있느냐의 관건인 것 같다. 또한 점심 시간 이후 인터넷 쇼핑몰 구매율이 최대치를 기록하는 대한민국의 현 근무 태도를 보았을 때 '4/3 근무 능력 쉐어링'이 이 땅에 뿌리 내기리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듯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4/3 근무는 반드시 실현해야

판에 박은 5일 근무제를 혁신하여 4/3 근무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공간 활용을 극대화 시키는 것은 저 성장, 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급하게 검토해야할 대상이다. 현재 우리나라 실버 세대 빈곤에 따른 고통지수와 세대간 반목이 극을 향해 치닫고 있고 청년 실업은 이미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이다. 


정부와 사회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 라는 한권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노동 형태 혁신에 따른 사회 변화의 새로운 단초가 되어지길 희망해 본다.   


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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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reenhrp.tistory.com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5.06.24 0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인하나가 죽는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정말 그런거 같아요. 너무 멋진말이네요.
    노인이 가진 그 수많은 노하우..그 역경. 그 모든것은 소중한 자산이지요. 그렇게 세상이 알아준다면..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책은 그런역할을 하겠네요. 기억해 둘께요.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가서 8장 6절)



오늘 문득 설교 시간에 아가서 8잘 6절 중에서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라는 문구를 보며 

성경은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을 사랑하는 신의 발자취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두려움'이고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주문은 "두려워하지 말라"이다)

인간이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죽음'이다.

하지만 사랑이 죽음만큼이나 강하다면 

우리는 사랑을 통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그 무엇으로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세상이 주는 안식은 잠시 동안의 '망각'일 뿐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해법은 없다.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이 사랑이 어디서 오는 지에 대한 탐구가 

곧 자신만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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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오르가 말했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냐고. 


목숨걸고 사랑했던 왕자님은 나중에는 애첩에 후궁까지 두며 자신의 (사랑?) 정력을 과신했고

동화의 주인공 백설이와 렐라는 허벅지에 대바늘을 꼿으며 '참아야 하느니라'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동화 속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다고..









▲ 요즘의 결혼


일당 20만원의 주례자는 검은머리 파뿌리를 외치며 다음 차례의 신랑과 신부를 축복해대고 

들떠 있을뿐  진지하지 않은 주례자 앞에 신랑 신부는 결혼을 계약한다.








▲ 집시의 사랑

집시 민족의 언어에는 '소유'와 '의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았으며 또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그들은 '의무'와 '소유'를 잃어버린 대신, 다른 두단어 '사랑'과 '자유'가 찾고자 하는 전부였다고 한다.

대지 위를 스쳐가는 바람 끝, 닿지 않는 곳을 찾아 떠돌다

밤이 되면 자신들의 별을 보며 헤메이는 보헤이안들...









▲ 결혼 서약

그들은 결혼 서약식에서 부족의 연장자는 이제 한 여인의 남편이 될 남자에게 말한다. 

"네 아이들의 어머니로 삼고자 하는 이 여인을 떠날 것이라고 맹세하라. 이 여인을 

더 이상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 여인을 떠날 것이라고 맹세하라.' 

이러한 맹세는 여자쪽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내가 될 여인도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쳐다보며 더 이상 사랑하고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를 떠나리라 맹세한다. 










▲ 사랑과 사랑 아닌 착각의 간극

사랑과 사랑아닌 착각의 간극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진실과 거짓은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고 떠다닐까?

사랑 때문에 흘려야 하는 집시의 눈물과 지금껏 내가 준비했던 눈물과는 무엇이 다를까......


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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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enooree.tistory.com BlogIcon 耽讀 2015.06.12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유와 의무보다 사랑과 자유!
    집시들 가치관과 결혼관 세계관, 우리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것 같습니다.

  2. Favicon of http://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5.06.12 14: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자본주의에서 진실한 사랑이 가능할까?" 하고 말입니다.
    지나친 생각이겠지만 가장 지고지순한 사랑조차 돈으로 계산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감각을 논할 때 인간에게는 표현의 한계가 있다. 아름답다, 맛있다, 새콤하다 등의 표현법을 가지고 우리는 일상에서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고 서로가 소통하며 산다. 그런데 때로는 '실제 감각'과 '감각 표현'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괴리 때문에 사람이 대상에 대해 온전히 안다고 말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온전히 아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앎'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않기에 생기는 오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먼저 앎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앎’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는 한 우리가 하는 모든 이야기가 ‘본질’과 상관없는 ‘현상’적인 이야기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눈 앞에 사과 한 개가 놓여있다고 치자. 한국에 사는 김 씨는 사과가 무척 맛있다며 맛을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 열대밀림에서 온 타잔에게 사과의 맛은 ‘시큼하고 달콤하다’며 맛을 설명한다. 이에 대하여 타잔은 사과 맛은 ‘시큼하고 달콤한 맛’을 자기도 잘 안다며 맞장구를 친다. 하지만 인색한 김 씨는 자기만 먹고 결국 지켜만 보는 타잔에게 사과 맛을 보여주진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간 타잔은 동물 친구들에게 '사과 맛' 설명하는 데 여념이 없다. 열대밀림의 바나나와는 차원이 다른 맛으로 ‘시큼하고 달콤하다’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어떤 맛일까? 동물 친구들의 입 속에는 이미 군침이 가득 돈다.


그러나 타잔의 설레발을 못마땅하게 듣고 있던 원숭이가 타잔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너는 사과를 먹어보았니?”

“........”


타잔은 자기가 들었던 사과 맛 설명을 듣고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상세하게 설명을 하니 친구들 역시 타잔이 사과 맛을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숭이가 보기에 ‘맛“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써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타잔은 사과 맛을 아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몇 년 후에 타잔의 초대를 받고 아프리카를 찾아 온 김 씨는 아프리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사과’ 이야기를 시작한다. 타잔과 김 씨는 오랜 시간 사과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야기 했지만 결코 본질에는 다가갈 수 없었다. 그것은 그 둘의 대화는 ‘현상’에 대한 대화이지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앎에 대한 논의의 시작




이와 같은 ‘앎’에 대한 문제, 그리고 어떻게 아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이냐의 논의는 매우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교과 과정 또는 상식으로 잘 알려진 플라톤의 [국가] ‘동굴의 비유’에서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그림자에 비친 상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소에 즐기는 대화는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상'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사과를 먹어보지 못한 타잔처럼 우리 역시 본질은 경험하지 못한 채, 현상만을 논하며 모든 것을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사는 삶은 아닐까? 여기에 대해 혹시나 고민이 든다면 '철학'을 만나야할 때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와같은 앎, 인식, 존재론에 대한 수 많은 생각을 쌓아올렸지만 여기서 답변을 찾는 방법은 그들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찾아야할 몫이다.  


Posted by 나비오
TAG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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