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이유는 사학재단에 대한 간섭이 싫은 것
교회에서 한장의 성명서를 나누어 주더군요. 제목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시행 반대 및 재의 요구를 위한 서명의 건' 이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명의로 발송된 이 문서는 수신처가 각 교회의 담임목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의 내용은 작년 12월 19일 서울시 의회가 통과시킨 학생인권조례안 중에서 기독교 학교에서 종교적 행위를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각 교회가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고 교인들의 서명을 받아 달라는 것입니다.
이 취지를 설명한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앙적 행동이라고, 미션스쿨에서 종교 행사가 금지되고, 동성애, 임신 출산 등에 대해 차별 금지가 생겨나면 우리의 아이들을 학교에서 제대로 지킬 수 없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항상 교회는 언제나 정치적인 것을 멀리하고 사회의 분쟁에 빠져들면 안된다고 주장해왔던 곳인데,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교회가 나서서 공식적으로 교인들한테 서명을 받고, 의회에서 통과된 정책에 대해 다시 의결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학생인권조례가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독소 조항을 포함하는 것에 대한 개신교의 절박함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앞다투어 서명에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을 보면서 선뜻 거수기처럼 성명서의 내용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1. 전면체벌금지와 두발,복장,휴대전화 소지의 자유
체벌금지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선의 교권이 무너진다는 우려가 있지만 체벌권으로 교권을 유지하려는 생각 자체가 무기력한 발상입니다. 그리고 두발,복장,휴대전화 소지는 자율적으로 맡기면 될 일이지요.
2. 학교 안팎에서 집회를 열거난 모임이난 단체 및 정치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학생이 정치 모임에 참여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겠죠. 정치는 어른들이 하는 것이며, 지도자가 할일이라고 보는 관점이 팽배한 개신교 분위기에서 학생들의 정치참여 금지는 당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정치를 잘하던가요? 그리고 학생들의 수업권과 복지를 잘 담당해 주었나요?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발언하고 의견을 모아 행동하는 것이 정치라면 그것을 학교라고 금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3. 기독교 학교 내에서 선교 금지
이 부분이 개신교를 가장 자극한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가장 설득력이 강한 동성애에 대한 반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미션 스쿨에 대한 종교 행위 강요 금지가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한 주된 반대 이유겠지요. 이 부분은 최효종씨한테 물어봐야 할 정도로 애매합니다. 기독교 학교에서 선교가 금지된다면 기독교 학교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얼핏 보아서는 개신교의 주장이 맞는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학교를 선택해서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자신의 종교를 이유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면 기독교 학교에서의 종교 행위 금지는 앞뒤가 안 맞는 정책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택이 아닌 학군에 따라 학교가 결정되기 때문에 종교가 없는 학생에게 종교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2004년 대광고등학교에서 종교 행위 강요에 대한 한 학생의 46일 동안의 단식 투쟁은 유명한 일화가 되었습니다. 선택제 학교가 아닌 이상 예배 선택권을 주어야지 강요를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4. 성적 지향(동성애),임신, 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때론 개신교가 하는 주장이 수구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 너무나 흡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개신교 전체를 보수집단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할 때, 항상 주변의 윤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흠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논란 중인 SNS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를 놓고, 정작 듣기 싫은 것은 정권에 대한 비판과 감시이면서 포르노와 음란물에 대한 제제를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많이 들어왔습니다. 동성애를 한다고, 임신과 출산을 했다고 하여 차별을 받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차별 받지 말아야 하는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입니다. 단지 그런 행위에 대한 제재의 수단을 개신교는 차별이라고 보는 것 같은데 너무나 안일한 생각입니다. 동성애, 임신과 출산을 했다고 학교가 학생을 정, 퇴학 시킨다고 아이들이 그것이 무서워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관심과 배려가 선행되어야 하고, 선생님들의 지도가 필요한 것이죠.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절대적 신뢰와 불신 사이에 놓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헌신하는 개신교도도 있지만 첨예한 사회적 문제는 방관하고 도리어 정권의 정치 논리를 따르고 대변하는 관변 종교라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서슬퍼런 군부 독재와 민주화 항쟁 가운데 타 종교에 비하여 개신교의 참여는 너무나 미약했고, 대형교회는 수수방관하였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이 세상의 것을 멀리하고 오직 종교적인 것에만 열중하라는 메세지를 충실히 따르는 거룩한 교인이기 때문에,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자신들은 하찮은 세상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개신교도들이 이번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해 이렇게 예민한 반응과 정치적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종교적 책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해야 하는 교회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해 오다가 자신들의 기득권과 직결된 기독교 학교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학 재단에 대한 제재에 대해서는 정치적 결정까지 뒤집어 업겠다는 생각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굳이 영화 '도가니' 이야기를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사학은 썩을 대로 썩었고, 특히 사학재단을 소유하고 있는 개신교 재단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점잖기로 유명한 교회 목사님들이 참여 정부 시절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며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거리 집회까지 하는 추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전 대한민국 역사의 순간에 역시 동일한 모습을 보였다면 인정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분들이 겨우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학교의 운영법에 대해서는 거리로 뛰쳐나간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2004년 사학법 개정 반대 집회, 피켓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학생인권조례안 역시 비슷하다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동성애 문제를 내세우며 비윤리적인 결정이라 흠집을 내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속내는 기독교 학교에 대한 간섭이 싫은 것이 겠지요. 기독교 학교 내에서의 선교 행위 금지가 관철되면 다음 번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동물적인 감각으로 위기 의식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다급한 문제이면 문서 하단에 '연락주시면 직접 받으러 가겠습니다' 라는 출장 서비스까지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 반대 서명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 틈을 지나 교회를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마음은 왠지 어둡고,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참 불편하더군요. 그런데 손에 들려 있는 성명서 가운데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힘든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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