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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어느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죽음


행복한 설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새해를 맞아 따뜻한 정으로 서로를 격려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TV에서도 유쾌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이야기들과 따분한 정치나 어려운 경제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설 연휴 중간에 뉴스에서 '어느 신입사원의 죽음'이라는 씁쓸한 기사가 흘러나왔습니다. 지난해 11월 국내 유명 제약회사를 다니던 이모씨(남.31)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혼자 자취하던 이씨의 집에서 2천여만원 어치의 쌓아온 약들이 발견되었고 결국 자살 이유가 회사에서 받은 영업 스트레스라고 추측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이씨의 죽음에 대해서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해당 회사는 직접적 책임은 없으나 도의적 책임을 지고 최대한 돕겠다는 내용도 소개되었구요(관련기사 클릭)
하여튼 이씨의 집안 가득 쌓아온 팔리지 않은 약들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하는 생각과 설 연휴가 되어도 아들을 잃은 부모닌의 마음은 얼마나 슬프실까  짐작조차 하기 힘들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예전 군대에 있을 때 일이었습니다. 조금 힘든 부서의 신참병이 자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는 말을 아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부대장은 참모 회의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하더군요. 그 신참병이 나약해서 자살한 것이라고 다른 병들은 다 잘 참고 인내하는데 그 신참병만 자살한 것이라고.

부대를 책임져야 하는 장의 말 치고는 너무 소름이 끼치고 황당하여 하루 빨리 제대의 그날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란 다소 차이 나는 개인의 역량을, 가장 윗선이 아닌 가장 낮은 사람의 기준에 맞추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게 조정하고 배려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신참병은 나약했던 것이 아니라 좀더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이었을 수 있고, 그가 부대에서 만난 고참이 좀더 고약했을 수 있죠. 이런 경우 부대 내의 다른 고참이나 지휘관이 이런 것을 관찰하고 배려하여 사전에 조정하고 배려 했어야 하는데, 죽은 사람 앞에 두고 나약해서 죽었다고 하다니 참으로 하늘을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사악한 부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더 승진을 잘 하는 것이 잘못된 사회의 전형이기도 합니다. 

                      [이모씨 집에 쌓아놓아던 약품들, 왼쪽 정리 후, 오른쪽 정리 전 출처 :MBC뉴스]

제약회사 영업사원 아니 근무한지 1년 정도의 신입사원 이모씨가 나약해서 자살을 선택했다고 하지 맙시다! 그는 노력했고, 열심히 뛰어 다녔고, 자기 돈으로 필요 없는 자기 회사의 약을 사다가 집에 쌓아놨고, 나중에는 사채까지 끌어다 섰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나아지질 않은 것이죠. 
그 상황 안에는 요즘 대한민국의 경제난도 들어 있을 테고, 제약사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되면서 위축된 제약사의 영업 조건도 포함될 것이고, 개인만의 어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돈으로 자기 회사 약을 사들이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 고용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삶에 대한 믿음 또한 사라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모씨는 신입사원이었습니다. 요즘 정말로 취직하기 어렵고, 취직하기 보다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대기업들은 연일 매출과 이익 증가 신기록의 빵빠레를 날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 상공인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몰락은 일할 수 있는 젊은이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빼았아 갔고, 취업이 되어도 비정규적이며 고용 불안이라는 공포를 만들었습니다.

[12월 결산 국내 47개 상장 제약사 상반기 실적 현황 출처 : 헬스코리아뉴스]

특히 이모씨 같은 영업 사원의 지위는 기업 프랜들리 정책과 함께 더 열악해졌습니다. 직원을 회사의 가족이라기 보다는 부속품 정도로 생각해 버리는 경영 마인드가 급속도로 퍼졌고, 대기업의 논리만 적극 반영된  비정규직은 회사가 얼마든지 직원을 쉽게 고용했다 버릴 수 있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영업 사원들은 최소한의 기본급만 책정되어 실적에 따른 수당제라는 기형적 임금 제도안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영업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수당제가 훨씬 유리하지만 어찌 신입사원부터 영업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신입사원에게 실적을 강요하고 몰아부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부품으로 보는 관점에 기인합니다. 직원을 통해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도한 실적을 강요하고 할당량을 만들어서 그것을 못 채우면 도태시켜버리는 시스템은 살인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업 사원의 경우 자신의 월급값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판관비를 모두 포함하여 순이익까지 할당량에 추가됩니다. 그들의 삶은 고단하고 또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힘들다는 회사의 상황을 한번 들여다 볼까요? 위에 보시면 국내 10대 제약회사 상반기 실적입니다. 사장님들은 너무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셔서 다 적자가 나는 줄 알았는데 당기순이익율이 10%대는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당기순이익 10%가 뭐 그리 대단하냐 이것도 위기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여기서의 순이익은 회사가 쓸만큼의 비용을 다 쓰고도 남는 순이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쓸만큼의 비용에는 무엇이 들어가는지 갖자 양심에 맡깁니다. 

설 연휴 기간에 우리는 참으로 슬픈 뉴스 하나를 들었습니다. 어느 제약회사의 신입사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이었습니다. 요즘 제약회사가 힘들고, 실적의 중압감이 있었고, 자기 돈으로 자기 회사 약을 사다가 집에 쌓아놓을 정도로 안간힘을 섰지만 결국 삶을 내려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이모씨 개인의 죽음이 아닙니다. 심각하게 열악해진 우리 사회의 고용에 관한 문제이고 이모씨는 회사 생활을 하다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지만 취업 준비생의 비관 자살 소식은 종종 들려옵니다.

설 연휴가 지나고 얼마 지나면 졸업식 시즌이 다가옵니다. 지금도 취업 준비에 바쁜 이들에게 좀더 따뜻하고 희망적인 소식이 많이 들려오길 바랍니다. 떳떳한 졸업과 당당한 취업이 가능한 사회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