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까칠한

유시민 정계은퇴, 평상복 차림 국회의원이 생각난다

대학시절 유시민 의원의 이름 석자를 처음 들었습니다.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대학가 사회과학 서적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에서는 일종의 '의식화 서적'이라 칭송받던 책이었습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이 책의 저자로서 경제학과 역사를 젊은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추천 꾹><손바닥 꾹>


 

[출처 : yes24]




▲ 파란만장했던 유시민 

제가 학교를 다니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사회 현상에 '비판'스럽기만 해도 '의식화서적' 일명 빨갱이 서적으로 치부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스개 소리가 있느니, 검문 걸린 학생의 가방에서 '막스 베버'의 책이 발견되었는데 경찰 왈 '막스'가 들어갔다고 잡아 갔다고 합니다. 근대 사회학을 성립시킨 막스 베버가 공산주의 이론서인 자본론을 쓴 칼 막스(마르크스)로 오인되었기 때문이죠. 


무식이 유식을 이기던 시대였습니다. 그와 같이 참담한 시절에 유시민 의원은 이름 날리던 저술가이자 활동가였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의 봄> 당시에 서울역 회군의 반대파 입장에 섰었고 이 후에는 수배 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1988년 MBC 월화 미니시리즈 8부작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란 멜로 드라마의 각본을 '유지수'라는 가명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MBC베스트셀러극장 <신용비어천가>의 각본 또한 썼다고 합니다. 평소 유시민 의원은 논리적이고 예리한 말 솜씨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라는 서사적 글쓰기 감성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 다음 영화]




▲ 똑똑하고 말 잘하는 유시민

이후에 정계 입문, 국회의원 당선,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참여당 대표, 통합진보당 창당 등 파란만장한 정치이력을 갖다가 어제 2월 19일 진보정의당 소속 정치인을 마지막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유시민 의원은 보수파에서도 좋아하는 정치인입니다. 그를 스타로 만든 시사토론을 보고 있노라면 논리정연한 말솜씨, 상대방의 헛점을 파고드는 집중력 등등 언어의 향연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수 논객이라는 사람들이 유시민이 토론자로 나오면 한번 붙어보겠다는 농담아닌 농담을 내뱉을 정도였습니다. 


정치에 관심 없으신 우리 어머니도 유시민 의원의 이름은 기억하고 '그 사람 정말 똑똑하고 말 잘하더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가 TV를 통해 남긴 인상은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시민 의원은 그렇게 엄격하고 논리정연하기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평상복차림으로 국회에 나와있는 유시민 의원]




▲ 평상복 차림 국회등원 

제가 기억하는 유시민 의원은 국회 등원 첫날 복장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 안하고 부패만 저지르는 국회의원들 면바지를 입으나 반바지를 입으나 모두 허식이며 사치라고 생각하겠지만 2003년 당시 유시민 의원이 재킷에 면바지를 입고 국회에 나타났을 때 고매하신 동료 국회의원들로부터 욕설과 야유를 들으며 국회의원 선서도 못하고 자리를 내려와야 했었습니다. 


저는 당시 유시민 의원에게 삿대질하고 고함을 질렀던 동료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 평가서를 좀 열람해 보고 싶습니다. 형식과 격식을 따지는 사람들이 언제나 바르고 성실하고 정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동료 국회의원이 국회에 등원하는데 정장을 입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국회의원은 본인들이 격식을 차릴만큼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마음 속에 자만심이 가득하기 때문에 유시민 의원이 평상 복장이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존중받을 만큼 대단한 직업인가요? 저는 그들이 양복이 아니라 진짜 일 열심히 하는 공장 노동자와 같이 '점퍼'를 입고 겸손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정장은 사치일 뿐입니다 




[출처 : 유시민 트위터]




그리고 2013년 현재, 국회에 넥타이를 매지않고 평상복으로 나타난다고 하여 10 여년 전 유시민 의원이 받았던 수모를 겪을 일은 없어 보입니다. 당시 유시민 의원은 조금 앞서 갔을 뿐 욕 먹을 일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시민 의원은 이처럼 조금은 남달랐습니다. 기존의 엄격함과 질서를 몸소 깨뜨림으로서 기성 정치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점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 눈에는 단지 철없고 예의가 부족한 사람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은 것입니다. 




[출처 : 유시민 트위터]




유시민 의원이 정치를 떠난다고 합니다. 부디 좀 남아주었으면 하는 정치인은 떠나고 떠나길 바라는 사람들은 한자리씩 꿰차고 내려올 생각을 안합니다. 정치란 원래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러다가는 정말로 혼탁한 정치인만 모인 구정물 정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가 떠나는 것을 잘가라고 손 흔들어주어야 하는 것인지 섭섭하기만 합니다.

2013/02/21 - [까칠한] - 명예훼손 발언하고 경찰청장에 올랐던 조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