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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젊은이들이 이민을 꿈꾸는 나라

젊었을 때 여행은 인생의 귀한 보물과도 같습니다. 여행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인생을 설계하는 지혜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려운 순간에는 여행의 순간을 돌아보며 새 힘을 얻기도 합니다. 어떤 실험에서 같은 돈을 가지고 본인이 원했던 물건을 구입한 집단보다 캠핑을 다녀온 집단의 만족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삶에서의 만족이 '물질'보다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견물생심을 자극하는 자본주의 생리는 소유하지 못하는 '만족'은 경멸케 하고 ,오직 내 손에 무엇인가 있을 때 안심하고 뿌듯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 또는 배우고 익히는 활동보다는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고 쌓아두려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자본주의 구조 안에 들어왔다면 자신의 고귀한 인성을 그대로 유지하기란 역부족인 것입니다.   



<추천 꾹><손바닥 꾹>




[제주도 갈대]




그런 의미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반자본주의적입니다. 끊임없이 소비해야만 유지되는 시스템에 대해 '소유의 활동을 멈추는 행위'는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자 절약, 아껴쓰기 운동 또한 자본주의의 그것과 상반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본주의의 아성이라는 이유는 그들의 금융시스템, 국가 정책에서가 아니라 대형마트에서 터질 듯이 쓸어담아내는 상품 소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지금까지 언제나 차고 넘치는 소비 활동을 해왔고 그것이 위축되었을 때 미국에 위기가 닥쳐왔다고 진단했습니다. 





▲ 전기세 폭탄

요즘 전기를 아껴쓰라는 정부 차원의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너무나 신봉하는 현 정부가 '절약을 하라'는 것은 처음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치에 안 맞는 것입니다. 전기도 물질이기에 급격한 소비 회전으로 자본주의 발전에 이바지해야할 품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주문하는 '전기 아껴쓰기'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전기세는 차등 적용 등의 방법으로 매우 많이 상승했고  여기저기서 전기값 폭탄이라는 원성이 자자합니다. 물가는 높아졌지 날씨는 춥지 우울한 마음에 집에서 등이라도 따스해야겠다고 전기장판, 전기난로로 겨울을 났던 분은 지금쯤 전기세 폭탄 청구서를 들고는 분노와 허탈에 몸서리를 치고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임기 중에 깜짝 쇼를 많이 했습니다. 세계각국이 폐기처분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외교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키고 세계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원자력외교라는 것을 펼쳤고 대통령이 원전수주를 직접했다는 식의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위험하다면서 원자력 발전은 왜 하는 것일까요? 화력발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에너지를 얻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국민들이 원자력 발전을 인정했다면 5년이 지난 지금쯤 우리는 양질의 값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해외에 판 원전 수익이 국내에 유입되어 국가 경제가 개선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면 정부는 물가를 낮추던지, 월급을 올려주던지, 세금을 깎아주던지, 복지 비용을 올리던지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평소와 같지 않은 전기세 폭탄 뿐입니다. 




[나비오의 철없던 젊은 시절]




▲ 이민 가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정부의 전기절약 캠페인은 자신들의 무능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민 이야기를 자주 꺼냅니다. "우리 이민이나 갈까? 한국 떠나고 싶어" "정말 지긋지긋해" 젊은 시절을 여행을 꿈꾸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아예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살겠다는 것은 약간 상황이 다릅니다. 


이민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더 좋은 조건을 위해 떠나고 실패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새출발을 위해 떠납니다. 최근 들어서는 아이의 교육 때문에 떠난다는 사람들도 꽤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구체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그냥 한국이 너무 답답하고 싫다면서 이민가겠다는 친구들이 급격히 많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작년 12월 19일 대선이 끝나고 아주 심각하게 이민을 생각햇던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참담하고 희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들은 이야기인데 유럽 술자리 모임에서 '정의가 과연 승리할까?"라고 질문하면 술에 취한 줄 알거나 정신병자라고 생각한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가지고 심각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라는군요


젊은 사람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 정의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 같습니다. 정의가 승리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는 너무나 절실합니다. 아래의 글들은 우리 사회 정의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최근의 사례들입니다.  





사회 정의의 근간인 법, 정치인, 종교인, 언론, 자본가, 정부 기관 등 가장 모범이 되고 정의를 위해 존재해야하는 집단 또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의를 무력화시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 아직 익지 않았지만 더 많은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




▲ 젊은이들의 이민 결심이 슬픈 이유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보다 순수합니다. 그래서 불의에 대해서 쉽게 반응하고 결단 내릴 수 있으며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제 정의를 위해 싸우기보다 너무나 지치고 체념한 나머지 대열을 이탈하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참을성 없음, 나약함을 비난하는 어르신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단순히 젊은이들의 철없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들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망하고 체념할 정도로 치명적이고 나쁩니다. "견딜 수 없으면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젊은이들에게 견딜 수 없는 대상이며 또한 즐기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이민'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그런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십년 이십년이 지나고 그 나라의 중심이 되는데 이들은 행복을 경험해보지 않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상처입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돌려놓을 '정치'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들이 웃으면서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세상을 있은 그대로 볼 수 있는 '언론'이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줄 '참다운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02/17 - [까칠한] - 민주당 모바일투표 비중 축소, 국민과 멀어지려는 발버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