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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개신교 교회, 교인수 300명이 적당한 이유

우리 교회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이 새로 이사를 가셨는데 엘리베이터 타기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윗층에서 내려오다 보면 문이 열리고 아랫층 주민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인사를 하면 자기 교인인지 동네 주민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명색이 교회 담임 목사인데 자기 교회 교인 얼굴을 기억 못하는 낭패를 보고 싶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는 목사가 기억 못 할 정도로 교인이 많은 것은 목회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더 많은 교인을 수용하기 위해 대 예배당 짓는 것을 멈추고 목회 활동이 중단된 주변 교회(교인 감소, 재정 악화 등의 이유로)를 인수해 본 교회의 인원을 분산시키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예배당 건축을 넘어서 프렌차이즈 지교회 설립 

한국 교회에 고질적인 풍토인 예배당 건축을 지나 지역마다 프렌차이즈처럼 지 교회를 넓혀가는 행동과는 거리가 먼 신선한 교회 개혁의 한 모습입니다. 이와같이 본 교회 인원을 분산시키는 시발점은 한 명의 목사가 너무 많은 교인을 책임지는 시스템의 비효율성과 오해 여지에 있습니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교회가 대형화 되면 평생 교회를 다녀도 담임 목사님하고 대화 한번 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입니다. 물론 지역구를 통해 부목사 등이 평신도와의 만남을 갖기는 하지만 교회의 대표 목사님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정도가 된다면 뭔가 인간적인 면은 사라진 교회일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하나님 보러 가지 사람 보러 가는 곳 아니다' 라고 스스로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인간 사는 세상에서 하늘의 매개자인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 오직 신만 바라보는 교회라면 무교회주의 운동가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것입니다. 









▲ 자기 교인 얼굴을 모른다면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리고 목사님이 자기 교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교인 입장에서 서운한 것보다 목사님 입장에서도 난처하고 부끄러운 일일 텐데 우리나라 대형 교회 목사님들은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러니까 점점 교회를 크게만 지으려 하지 교인들의 지경을 살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형교회의 경우 시스템을 잘 갖춰서 담임 목사 밑에 소모임 부목사들이 충분히 교인과 만나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부목사님들이 하나의 교회를 대표할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교인의 수를 분산시켜 독립적인 교회가 늘어난다면 현재 한국 사회에 병폐로 들어나고 있는 대형교회의 세습화, 정치화 등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선하고 능력있는 지도자의 독재가 더 훌륭한 지도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목사님이 많은 교인을 거느리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목사님이 언제나 영원할 수 없습니다. 선한 체계가 온전히 유지되지 않으면 붕괴되거나 타락하게 되는 것은 인간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금도를 넘어서면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선한 '독재'는 영원할 수 없어 처음부터 시작 안하는 게 좋습니다. 








▲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교인수?

감당할 수 있는 교인 수와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을 오래동안 유지할 수 있는 교회운영의 기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벗어나 더 크게 짓고 더 많은 사람을 끌여들여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많은 돈이 오가다보면 유혹과 타락의 손길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타락은 자기의 탐욕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둘러대며 고집부리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개신교가 비난받는 이유는 '신앙' 때문이 아니라 '행동'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세상 멸시가 있을 것이라는 성경 말씀은 세상적인 것을 멀리하고 신앙적 행동을 했을 경우에 따르는 비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비난은 종교가 너무나 세상적인 행동을 일삼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비판들입니다. 믿음 때문에 세상이 뭐라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죠 


그러나 일부 목회자들은 이것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세상적인 행보를 마치 고난의 길을 선택한 순례자 마냥 으스대며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 교인들이 어떤 어려움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하나하나 살피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교인들 개인보다 교회 자체와 세상과 정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 300명 , 한국 개신교의 적정 교인수 

어떤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그래서 가장 적당한 교인수는 300명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 교인 수는 주말에 모두 얼굴 마주하며 악수할 수 있고 돌아가며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숫자라고 합니다. 물론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도 교인인지 주민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이 넓고 사람이 많으면 수고로움 또한 더 커집니다. 열심으로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더 큰 예배당과 교인을 원하는 목사님이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진정한 능력이 얼만큼이나 될까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한 마음과 능력이 얼마동안 유지될 수 있는지 또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