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서 블나로그 발행은 잠시 미루고 예전에 기록했던 글들을 올립니다.







한국 아트록의 새로운 전망 


-조윤 뫼비우스 스트립 발매를 알리며-




9월초 한국의 음반시장에는 너무나 무심하게 한 무명 아티스트의 역작이 내동댕이 쳐졌다. 뭔가 껀수만을 노리며 개처럼 몰려다니는 언론의 레이다망을 교묘히 뚫고(?) 너무나 소리소문 없이 그 작품은 우리의 귓전에 다가 온 것이다. 물론 그 반향을 미리 점치는 것은 성급하다 할 수 있지만 그 음악이 한국이라는 음악 후진국에서 갖는 의미가 너무나 크기에 지금과 같은 냉담한 반응이 무척 아쉽기만 하다. 

어떤 댄스그룹의 표절시비 이후의 그 온전하지 못한 컴백에 대해 얼마나 많은 TV, 라디오, 신문이 떠들어 댔는가? 그리고 그들의 떠듬이 나중에는 그 댄스그룹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도리어 분위기 형성의 팡파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 버린 우리는 또 얼나마 쉽게 그들을 잊었던가? 아직도 나의 귓가에는 한 여대생의 인터뷰 내용이 생생히 전해 온다. 그들은 “예술가니까 용서해야죠”

너무나 무심한 상대적 빈곤감과 아울러 이것은 분명 절대적 빈곤감이라는 선언은 조윤의 [뫼비우스 띠]를 계기로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인 것 같다. 진보 음악에 대한 시도가 거의 전무하고 무시당하는 한국의 음악계에 조윤의 음반은 허송세월 해버린 십수년을 보상받을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답고 진지한 음악이라 생각한다. 물론 막강한 전통과 끈임없이 시도되어오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울타리 위에서 세워진 유럽록에 비하면 약간의 아쉬움도 남길수 있는 음반이지만 그 앨범 제작 상의 어려움과 음악기기의 후진성을 감안한다면 유럽의 그 어떤 명반에 뒤지지 않을 앨범인 것이다. (꺼덕하면 앨범 제작차 외국을 나간다는 우리의 대중음악인들의 해외나들이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그리고 그는 거의 홀연 단신으로 우리 앞에 섰다는 것이 그를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뫼비우스 띠]는 여러 가지면에서 한국 음악의 혁명을 선언하는 위대한 예술품이다. 앨범 커버의 획기적 아이디어, 그리고 앨범 타이틀이 가지는 상징성, 즉 단순히 깨어지지 않는 난제로서의 신비감 뿐만 아니라 이 상징이 현대철학, 예술, 문화에서 가지는 지적대상으로써 진지함이 함께 내재되어 있으며 이 상징성을 풀어내려가는 한곡 한곡의 수록곡들이 가지는 영혼의 언어와 시, 마지막으로 이러한 예술적 혼합체가 결국 궁극의 대상인 음악 안에 너무나 고스란히 그리고 너무나 아름답게 녹아내려 있다는 것은 이 음반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음반보다도 앞에 있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까지만해도 서태지를 문화 대통령으로까지 추대하며 그 말하기 좋아하던 한국의 지식인, 언론인, 문화 평론가 등등은 뫼비우스 띠의 출현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해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그들의 무지일 것이며, 둘째는 말을 팔아먹고 사는 자들, 즉 그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아무런 성찰없이 끊임없는 담론을 생산에 내고 그 무의미한 담론이 생명을 얻어 출판, 방송, 광고 등으로 나아가 돈벌이가 될 때를 기다리는 새로운 문화 자본가들에게 조윤의 뫼비우스 띠는 별로 구미에 맞지 않는 별볼일 없는 상품일 것이다. 그리고 도리어 그들의 눈에 조윤의 음반은 자기네들이 애써 마취해 놓은 무지의 대중을 일깨울 수도 있는 무서운 독버섯으로까지 보일 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모든 무관심의 이유가 첫째번 것에만 해당되길 바랄 뿐이다. 

내가 이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조윤이라는 한 아티스트의 음악적 재주와 천재성은 아니다. 우리가 예술을 이해하고 삶을 바라보기에 앞서 우리가 전제해야만 하는 것은 가치와 감각의 다양성이며 그 숱한 다양성 안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이끌어낼수 있는 인정의 폭을 점차 확대시켜 대중들의 문화소비를 양질의 생산으로 이끌수 있는 토대와 공유점을 만들어나가자는 뜻에서이다. 그러나 내가 진단하건데 지금의 우리 문화 생활은 불행히도 대단히 기만적이며 고도의 정보조작들에 의한 절대적 잣대로 자리매겨짐과 아울러 이러한 보수의 잣대에 퉁겨져 나와 너무나 애처로울 정도의 자유를 갈구하는 그래서 자유주의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환상 속에 사는 또하나의 반대급부가 판을 치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던 그래서 주인이 직접 나서서 음악 틀고 음악 설명하던 그러나 결국에는 삶은 열정만으로는 안되를 읊조리며 가게 문을 닫아야만 했던 음악카페들이 이제는 주말에 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으며 어디서 골라 모였는지 음악을 즐긴다기 보다는 오직 자유분망한 분위기만을 느끼는 왁자지껄한 사람들(내가 보기에 이들은 실제로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그들은 그 큰 음악 소리에도 불구하고 연신 옆에 사람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내가 파리가 날리던 시절에 만났던 그때의 모습은 아닌것 같다. 분명 그때의 락과 오늘의 락은 동일한 데 그 소비층의 이러한 변화는 무엇일까? 그때의 음악듣기는 음악과 아울러 우리 주위의 빈자리를 애석해 했으며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음악 자체를 이해하려 발버둥쳤고 음악만을 들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이러한 현상들을 종합해 볼 때, 대한 민국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미국의 랩 음악은 태평양을 건너며 그 원래가 가지고 있던 진보성을 모두 태평양에 버린듯 우리에게 오직 댄스뮤직으로만 다가왔고 이제 유럽의 록은 대륙을 건너며 그 진지함과 저항성을 땅에 파묻고 우리에게 그 껍데기만이 우리 곁에 자리잡은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식의 문화수용과 문화읽기의 원인 분석과 긍정성과 부정성의 선별 그리고 여러 가지 대안들, 이것이 이제부터 조윤의 음반을 계기로 이 문화와 예술의 불모의 땅 대한민국에서 다시 시도되어야 할 논쟁이며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문제제기와 원인 분석들 이제까지 기표들만 무성했던 문화와 예술에 대해 진지한 밀착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하나의 작업들이 결국은 싸구려와 비상식이 판을 치는 아시아의 한나라를 그나마 중간의 위치에 오르게 하는 소중한 일이라 생각한다. 



1997.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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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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