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가 생각해 보아야할 영화 몇편
세상은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천상의 하나님과 지상에 악마와의 대결은 인류가 처음 이야기라는 것을 지어냈을 때부터의 주제였습니다. 헐리우드가 이 선과 악의 극명함을 보여주며 빠른 스토리 전개로 재미있는 영화가 된 반면, 유럽의 예술영화들은 선과 악의 모호함과 정적인 시간 설정으로 왠만한 인내력과 지적 수준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입니다. 물론 뒤에 예술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저급한 것들도 많지만, 일단 스토리가 있고, 거기에 영상미와 그것을 배경으로 하는 음악이 깔립니다. 예술의 3개 요소인 문학, 미술, 음악이 한데 어우려져 있고, 거기다가 현대의 테크놀러지 기술을 끊임없이 접목 시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직업을 뽑으라고 하면 주저함 없이 영화감독을 뽑습니다.
이런 영화가 가지는 복합적인 요소 때문에 영화에는 알게 모르게 메세지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지요. 어떤 실험에 따르면 영화 화면 속에 계속해서 코카콜라의 이미지 컷을 숨겨 놓고 의도적으로 노출시킨 결과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의 갈증도 높게 나오고, 코가콜라를 사서 마신 비율이 유효범위 안에서 높아졌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전 너무 힘들거나 우울할 때 '인생은 아름다워' 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보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재미와 아울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잘 지켜야 할 경우도 있고, 의미있는 긍적적 메세지에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어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 '지중해'에서 주는 삶의 달콤함(?) , '인생을 아름다워' 에서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라는 메세지는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 개신교가 참으로 많은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신교를 비난하는 것이 사회 정화의 차원인지 아니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는 트렌드인지 모르겠지만 문화의 최전방인 영화에서도 역시 반 기독교적인 메세지들이 하나의 주류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딱 잘라 감독의 의도가 개신교에 대한 비난은 아니지만 그 영화에 빠져든 사람에게 개신교의 세계관과 윤리관은 다가서기 힘든 낯선 것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1. 인셉션
서양인들에게는 일직선적인 세계관이 득세를 해 왔습니다. 2000년 서양의 역사가 기독교와 함께 해 왔기 때문일 수 있고, 일찍부터 과학을 숭상했던 서양인들에게 동양의 윤회사상이나 선 사상 등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 누각과 같은 논리쳬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서양의 과학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서양의 지식층이 인도의 요가를 동경하게 되고, 불교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인셉션은 참 좋은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감독이 의도했던 것 이상의 상상과 해석이 끊임없이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인셉션은 기본적으로 동양의 윤회적 세계관에서 그 형식미를 구현한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꿈과 현실을 오고 가며,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꿈인지 질문하게 합니다. 3차원에서는 불가능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현실과 꿈이 일직선상에 존재하는듯 하며 계속하여 순환합니다.
서양의 회귀이론은 그리스의 궤변론자들에 의해서 구상되어졌지만 역시 동양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으로 일컫어지는 도가 사상과 불교의 윤회이론이 그 핵심입니다.
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
도(道)를 도라고 말하면, 도가 아니요, 명(明)을 이름하는 순간 명(이름)이 아니니라
[도덕경 제1장 첫구절]
[인셉션은 꿈을 현실이라고 하면 꿈이 되어버리고 현실이 꿈이라고 하면 현실과 중첩되어 버립니다]
인셉션처럼 인간이 계속하여 꿈과 현실을 오고 간다면, 신이 이렇게 질문할 겁니다
' 너 언제 천국에 올래, 아니면 지옥으로 갈꺼냐?'
그러나 영화 인셉션에 빠져든 관객이라면 신의 이런 식의 질문에 관심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통해 사람의 의지와 생각을 바꾼다는 설정 자체가 개신교에게는 치명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줄기세포 주사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자기 몸에서 추출한 지방을 배양하여 어떻게 다시 자기 몸에 주입할 수 있냐는, 신이 주신 육체를 어떻게 조작할 수 있느냐라는 윤리적 문제에 부딪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한국에서는 불법으로 묶여 있고, 유럽과 일본, 중국 등에서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물며 육체의 것도 뺐다가 다시 넣을 수 없는 데, 신이 내려 준 신성한 정신이 타인에 의해 꺼내지고 조작될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신에 대한 불경인 것입니다.
2. 이끼
영화 이끼에는 쟁쟁한 배우들이 나옵니다. 탄탄한 원작을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력으로 완성시킨 영화입니다. 그런데 저 영화 포스터에 나오지 않는 쟁쟁한 인물이 한명 더 있으니 바로 유목형 역의 허준호 입니다. 그는 기독교의 교리를 완전히 계승한 인물로 절대 의인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철저한 금욕과 절제된 생활로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이고 결국 돈까지 움직일 수 있는 절대선(善)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마을이장 (정재영)이 포섭하여 함께 공동체 마을을 이끌게 되는 것이죠.
[포스터 대열에 나오지는 않지만 허준호(유목형 역)의 연기도 일품입니다]
그런데 이 유목형의 파괴 과정이 너무 적나라합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비춘 유목형의 모습은 요즘 존경받는 종교지도자들이 가지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그는 철저히 가난하게 살려했고, 인기를 구하지도 않았고, 단지 모든 것을 성경책과 기도로 해결하는 개신교의 모범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원수가 뺨을 때려도 끝까지 인내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칼을 들게 되지요. 그리고 그 과정이 극악무도한 전과자들 앞에서 철저히 무너져 내립니다. 영화 이끼에서는 목사 유목형을 죄를 멀리하라고 했지만 결국 본인이 죄성을 이기지 못하는 패배한 인간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3. 엑스페리먼트
'악마를 보았다'를 보려고 했는데 친구가 하도 우겨서 어쩔 수 없이 보게된 영화, 하지만 영화가 가지는 메세지는 상당히 강력하지요. 사람들을 설정된 교소도에 가두어 놓고 교도관과 죄수로 역할 분담을 해 놓은 후 20일을 지켜보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스토리를 가지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전 온몸에 문신을 하고 등장한 장발의 배우보다, 단정한 양복에 성경책을 들고 있는 흑인 배우가 나중에 더 악당으로 변할 것을 미리 짐작 했습니다. 사실 영화가 좀 어설펐어요^^
[교도소에 나열한 죄수와 교도관 (역할자들)]
교도소로 설정된 공간 안에서 권력을 가진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하는 지를 보여주기 위한 영화였는데, 사실 교도소는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땅을 상징하며, 확실한 폭력과 악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입하지 않는 실험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절규와 실험자가 지시하는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자신들의 행동은 정당하다는 교도관 역할자들의 뒤틀린 윤리관이 나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명백한 악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이 신에게 절규를 하며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런 대답없는 신에 대한 비난이라고 해야 할까요?
신에 대한 가장 진지한 소설을 썼던 니코스 까잔차키스의 '신이여, 당신이 전지전능하시다면, 제발 빵 한조각만 주소서!' 라는 소설 속 절규와 동일한 외침이 지금도 전세계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전을 아직도 판단 내리지 못하고 선한 전쟁이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속 폭력과 악을 서슴지 않는 교도관의 행동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신의 빨간불이 안 들어왔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미국의 행동과 유사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가장 모범생이, 설정의 공간에서는 가장 타락합니다]
그런데 감독은 영화의 결말을 이것을 계획하고 설정했던 실험자를 범법자로 구속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폭력의 실험에서 빠져나온 주인공은 결국 여자친구를 만나러 인도로 떠납니다. 주인공의 구원은 인도와 여자친구 라는 다소 이상한 라스트씬입니다.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교도소는 이땅, 죄수는 인간, 교도관은 권력을 가진 악마 또는 사탄, 실험자는 이것을 조정하는 신, 이런 구조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상처입고 죽고 결국 실험자는 구속되는, 저의 해석이 맞다면 영화 익스페리먼트는 신을 구속시킨 영화가 되는 것입니다.
개신교가 불편해 할 수 있는 영화이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메세지가 어떤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문제제기가 될 수 있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해 나갈 수 있느냐는 발전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세편의 영화는 철없는 악마숭배나 폭력을 찬양하는 영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개신교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지만 개신교가 피하지 않고, 여기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세상으로부터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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