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도시가 쓸쓸함을 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도시생활이 '함께'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 펼치는 경주라는 생각에서 오는 경쟁의식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 수의 감소로 경쟁 상대가 사라졌다는 안도감이라고 할까요?^^ 하여튼 부적거리는 도시도 나쁘지 않지만 때로는 한산한 것이 더 매력적입니다.
여유있는 시기에 책 한권을 떠내들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 입니다. 법정 스님이 살아계실 때 기억이 회색 옷과 밀집모자를 쓰신 모습으로 남아 있어 매미가 울고 햇빛이 비치는 여름이 되면 산이 생각나고 산 속의 한적한 암자가 떠올라 법정 스님의 책을 떠올리게 된 것 같습니다.
['텅 빈 충만' 뒷장에 쓰여 있는 구절과 무소유를 실천했던 법정스님의 단촐한 방입니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가득 찼을 때보다도
오히려 더 충만하다
['텅 빈 충만' 중에서]
[ '텅 빈 충만'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 입니다. 밀집 모자를 쓰고 계신 법정 스님과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울컥합니다]
'텅 빈 충만'은 총 4개의 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89년 초판이고 여러 글을 모아 만든 수필집으로 법정 스님의 주변 일상을 스님 특유의 지혜와 겸손으로 풀어내신 책입니다. 각 부의 초입은 삽화와 함께 대표적인 글을 발췌하여 장식하였습니다.
빛바랜 책이지만 내용만은 마음에 담아두어도 전혀 바래지 않을 것 같아 사진으로 옮깁니다.
[제1부 서문]
[제2부 서문]
[제3부 서문]
[제4부 서문]
'텅 빈 충만'은 법정 스님의 수상집이며 여러 글을 모아둔 가운데 '텅 빈 충만'이라는 단편을 책 이름으로 하여 출판한 것입니다.
책 가격이 3,500원이었네요^^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고 때아닌 '무소유' 책 값 논란을 지켜보며 가신 법정 스님의 뜻은 정말로 그것이 아니었는데 도리어 반대로 책을 가지고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과 거기에 붙어 저작권과 자유와 공유를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며, 사람이 참으로 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법정 스님의 책 읽을 여러권 가지고 있었고'무소유'가 백여만원을 호가 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팔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려 하는 것을 '능력' 있는 행동으로 평가하고, 없는 사람들이 더 가난해 지는 것을 너희가 열심히 살지 않았고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무시하는 '배려'와 '사랑'이 무너진 시대에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이 주는 메세지는 그 제목 안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비울 수록 충만해 지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겠죠. 그리고 법정 스님은 스스로 이 가치를 지키시고 살다 가셨기에 우리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이것은 요즘 우열 경쟁으로만 치닫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정에서도 배울 수 없는 가치이며, 어른들의 사회 생활에서는 더더욱 뜬구름 같은 소리겠지요.
하지만 법정 스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텅 빈 마음 가운데 가득히 충만해져 오는 행복을 당신네들이 누리길 원하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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