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를 보면 한가지 재미있는 경향이 있는데 모든 소식을 예능화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정치나 경제 뉴스는 우리 실제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조금은 진지하게 다루어야할 필요가 있는데 마치 연예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파파라치처럼 화면은 구성하고 기사 제목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손바닥 꾹>
▲ 여론을 조작하는 언론
그리고 정작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비중을 축소하거나 은폐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일의 경중을 헛갈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전히 수사 중인 민간인 불법사찰과 같은 경우, 국민 개인이 불법사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국가가 자행한 초유의 범죄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뉴스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와 내용이 부실하기 이를 데 없고, 고작 국민의 10%한테 지지를 받은 통합진보당 부실선거에 대해서는 거의 특집보도식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해서 검찰이 밝히지 못하는 내용을 취재하고 보도하여 사건을 조속히 처리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을 그런 민첩함과 적극성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언론이 죽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권재홍 앵커 대신 자리를 채운 정연국 앵커, 배현진 앵커의 표정이 사뭇 심각합니다. 아래는 자료 화면,
mbc뉴스데스크 캡처]
그래서 방송과 언론 노조의 장기 파업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가 자명한 것이고 공정성 확보와 낙하산 사장에 퇴진에 대한 요구가 정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어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MBC 간판 뉴스인 9시 뉴스데스크의 권재홍 앵커가 자리를 비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앵커가 자리 비운 이유를 영상으로까지 보여주는 친절한 뉴스데스크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것은 노동조합의 110일째 장기 파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김빠지고 생생하지 못한 뉴스를 주로 다루던 MBC 뉴스가 권재홍 앵커 개인이 자리를 비운 사안에 대해서는 영상까지 보여주면서 마치 연예 뉴스 다루듯이 현장감있는 보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보수 언론의 기사 제목 역시 '권재홍 MBC노조와 충돌 부상' 처럼 마치 서로간에 치고박고 싸운 것처럼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날 뉴스데스크에서는 '권재홍 앵커가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아 당분간 방송 진행을 못하게 됐다. 권재홍 앵커는 16일 오후 10시 20분께 본사 현관을 통해 퇴근하려는 순간 파업 중인 노조원 수십 명으로부터 저지를 받았다. 권재홍 앵커는 차량탑승 도중 허리 등 신체 일부를 충격을 받았고 그 뒤 20여분간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한 방송사를 대표하는 9시 뉴스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사안이고 그것을 다루는 태도 역시 대단히 사적이며 고약해 보입니다. 그냥 개인적 사정으로 당분간 정연국 앵커가 진행한다고 보도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9시 뉴스가 다루어야 할 주제는 나라와 국민 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어야 하지 파업을 벌이고 있는 MBC노조의 성토의 장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 권재홍앵커 뉴스 중단이 뉴스가 되는 불편한 진실
결국 MBC 뉴스가 그렇게 생생하고 자극적으로 권재홍 앵커의 부재 이유를 알리는 이유는 파업을 벌이고 있는 MBC 노동조합이 매우 폭력적이며, 멀쩡한 사람의 퇴근까지 막는 불합리한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사심이 들어간 뉴스가 온전할 리 없는 것이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구요.
정말 MBC가 자신들의 권재홍 앵커가 자리를 비운 이유를 뉴스에서 제대로 설명하고자 했다면 왜 노동조합이 보도본부장인 권재홍 앵커의 퇴근을 저지했는지 이유를 한 줄 정도 설명하였더라면 균형잡인 보도이지만 저렇게 일방적으로 폭력 현장처럼 묘사한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을 메인 뉴스에서 보도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는 것을 MBC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만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정말로 권재홍앵커와 MBC노조 사이에 큰 충돌이 있었을까?
모든 것은 양방의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참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MBC노동조합이 말하고 있는 그날의 사건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MBC 노동조합 캡처]
▲ 차 안에서 공포에 질려 사진을 찍었다?
권재홍 앵커가 퇴근을 저지당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차를 가로막고 있는 노조원들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뉴스데스크에 말했던 것처럼 차에 갖혀서 옴짝달싹 못하고 큰 충돌이 일어났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 사진을 보시면 차 안에서 현장 사진을 찍고 있는 권재홍 앵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가벼운 차량 접촉사고 이후에 현장 사진을 찍고 있는 평범하고 차분한 사람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사람이 외상을 당하고 공포에 싸인다면 그 대상에 대해 저렇게 태연하게 사진을 찍지는 못할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그렇다면 왜 노동조합이 권재홍 앵커의 퇴근길을 막아선 것일까요? 이제 이것이 궁금해지지 않나요? 우리는 눈 앞에 보여지는 사건에만 관심을 갖지 그것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이전까지 파업콘서트, 프리허그 행사, 여의도 텐트 농성 등 너무나 평온한 파업을 벌이던 MBC노동조합이 왜 이렇게 실력행사까지 불사하게 되었을까요?
[5층 보도국을 폐쇄하여 계단을 오르는 MBC 노동조합 기자들]
▲ 1980년 계엄령 하에서도 멀쩡했던 MBC 보도국이 폐쇄된 이유
이 한장의 사진을 보면 대강 이해할 수 있습니다. MBC파업으로 신조어가 탄생하였습니다. '시용(試用) 기자'라고 들어보셨습니까? MBC는 파업을 벌이고 있는 기자를 대체하기 위해 1년 근무(시용) 후 정규직으로 임용하겠다는 채용조건으로 경력기자를 모집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MBC 경영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자기 직원들이 파업을 벌이니까 대화나 해결 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파업 중에 있는 노조원을 대신하여 대체 인력을 뽑아버리는 것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처사입니다.
이런 처사에 대해 MBC기자들은 시용기자 모집 반대 시위를 벌이려고 집회 장소인 보도국을 향했는데 MBC사측은 아예 5층에 있는 보도국을 폐쇄해 버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황당한 일인 것이죠, 노동조합에서는 1980년도 계엄령 하에서도 없었던 일이 지금 일어났다고 비분강개하며 이에 책임자인 보도본부장인 권재홍 앵커를 찾아나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퇴근 저지 시도가 있었고 차를 가로막는 가벼운 마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SNS 상에서는 권재홍 앵커가 MBC노동조합의 장풍을 맞고 다쳤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돌정도로 '부상의 정도'에 대해 의심을 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리고 MBC 노동조합은 그날의 마찰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증거 자료 또한 제시하고 있습니다.
▲ 부상에 대한 진실 공방, 하지만 MBC 뉴스는 이미 소식을 엎질러 버렸다.
그날의 사건은 제가 직접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차에 황급히 타려다가 근육이 놀라버려 본인만이 생각하는 부상이 있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문제는 MBC는 9시 간판 뉴스에서 이미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 마냥 이 사실을 영상과 멘트로 세상에 알렸다는 것입니다. 만약 권재홍 앵커의 부상이 생각보다 큰 것이 아니라면 이날 이례적으로앵커 부제의 뉴스를 전한 MBC는 매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특권을 이용하여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날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행태는 방송사가 파업을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체를 소유한 당사자들이 그것을 사적 욕심에 사용한다면 여론을 흐릴 수 있기에 공정성과 형평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필요조건입니다. MBC 노동조합의 파업은 바로 이것을 위해 110일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승리하고 나면 최소한 뉴스 앵커가 자리비운 이유를 영상으로 까지 보아야할 일은 없어지진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요즘은 정말로 다루어야 할 뉴스가 깨알같이 많은데 앵커가 자리 비운 이유를 영상까지 보여주는 친절한 뉴스는 우리에게 필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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