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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찜통 지하철 안에서, 사라져가는 소소한 삶의 기쁨

어제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볼일을 보러 다녔습니다. 한 여름 지하철 하면 생각나는 것은 시원한 냉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제가 탄 지하철은 시원하기는 커녕 땀이 흐를 정도로 숨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서울에 다른 노선은 괜찮았던 것 같은데 지하철 9호선이 많이 더웠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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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지하철은 어디로? 

대낮의 사람 없는 지하철은 시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출퇴근길 사람이 많은 지하철의 온도는 실내 기준으로 30도를 웃도는 것 같았습니다. 서울시 민원센타에 문의해본 결과 지하철 여름철 냉방온도는 28도를 적정온도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실내외 온도를 고려한 것이라 만원 지하철의 경우 실내 온도가 실외 온도보다 훨씬 높아지는 수도 있습니다. 


퇴근길 시민들은 지친 모습과 함께 땀을 닦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온이 올라가면 살만 닿아도 짜증이 폭발할 것 같다는 공포감(?) 잠시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소설 속의 누군가는 태양에 눈이 부셔 살인을 했다고 하던데 2013년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치밀어오르는 더위로 사람을 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청년 시절. 선배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름이 시작될 때는 연예를 하지말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애정의 강도가 강해도 몰려오는 더위와 불쾌지수가 둘 사이를 짜증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여름에 헤어지는 커플이 많다는 비공식(?) 통계자료도 있습니다. 





소박하고 단순한 우리의 삶

우리 삶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먹고 출근하고 일하다가 점심먹도 또 일하다가 저녁 무렵에 퇴근합니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음주가무를 즐깁니다. 결혼하면 돌아와 집안 일을 거들어야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애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그 아이가 커서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하지 않으면 그땐 우리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일하러 갑니다. 


그러다가 회사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거나 충분히 먹고 살만하다고 생각되면 반복된 삶에서 '일'은 한쪽 저 켠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범주에 포함되는 대부분은 '충분히 먹고 살만하다'의 경지에 오르기 쉽지는 않습니다. 첫째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먹고 살만한 절대적 부에 오르게 쉽지 않은 것이고 둘째는 그런 경계를 올라서도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이 우리에게 만족은 안드로메다 성운 밖으로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 삼겹살 값도 오르고 

서민 삶의 단골메뉴였던 삼겹살은 물가가 치솟는 바람에 이제 우리가 즐기기에 부담없는 음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 서글픈 것은 삼겹살에도 등급이 나눠져 싼 식당에서는 5,000원 미만짜리가 있는 반면 일반 음식점은 만원이 넘습니다. 세명이 삼겹살을 앞에 두고 식사와 술을 즐기면 오만원은 훌쩍 넘기고 누군가에게 오만원은 간식비일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무척 큰 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려다보면 한도 끝도 없는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정신차리고 사는 이유는 그래도 삶의 소소한 재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나가는 친구가 외제차를 끌고 다녀도 실내 온도만큼은 빵빵한 지하철을 타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자위할 수 있었고 고급 스테이크를 자르며 '맛'은 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한다'는 궁색한 논리를 내세우며 삼겹살을 즐길 수 있는 호기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하철도 덥고 삼겹살도 비쌉니다. 





▲ 외제차,  양식당 셰프가 해 준 요리 부럽지 않았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나를 위한 자리 하나가 생기면 외제차 부럽지 않은 시원함으로 삶을 즐길 수 있었고 삼겹살에 각종 야채를 올려 한입 가득 입에 물면 고급 셰프의 양식당이 안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소소한 즐거움 마저 빼앗가는 것은 누굴까요? 


마치 원전이 나라를 구할 것처럼 떠들고 다녔던 대통령은 자리에 없습니다. 원전비리에 휘말린 대한민국은 전기 공급이  불안하다면서 공공기관 실내온도 28도 지침을 하달했다고 합니다. 원전비리로 돈을 받은 인간들과 준 기업이 벌어들인 돈, 그 액수가 얼마였기에 결국 시민들은 지하철 안에서 영문도 모른 체 찜통 더위에 시달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모두 미국산 수입해 먹고 강도 파헤치며 평소에 손 놓고 있다가 전염병 발생하면 해당 가축을 모두 땅에 파묻어 버리는 간단한 해결방법이 득세했었습니다. 그것이 정치고 법치고 상식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이 있었죠


결국 돼지가격은 롤러코스터가 되었고 한번 올라간 가격은 다시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덩달아 올라버린 야채값으로 야채에 고기를 올려먹는 것이 아니라 고기에 야채를 얹져먹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런 모든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너무 떳떳하고 방만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 사라져가는 소소한 삶의 기쁨

서민의 소소한 행복은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찜통 지하철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얼굴은 너무나 지쳐있었고 어두웠습니다. 단지 실내 온도가 높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소소한 삶 속에 간직했던 '희망'이 '포기'로 전락된다는 것을 마음 속 어디선가 느끼고 있기 때문 같았습니다. 


지하철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시원한 바람이 코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머리는 다시 맑아졌고 열심히 활동했던 땀구멍은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예전의 소소한 삶의 기쁨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길모통이 파라솔에서 삼삼오오 치맥을 즐기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저는 남아있는 하루를 보내기위해 성급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