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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한국일보 회장 구속, 편집권 소유가 언론을 망쳤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언론'이 바로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매스미디어 사회에서 개인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언론'은 국가 시스템에서 인정하는 공익 영역이고 법으로 그 제도를 인정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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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장재구 회장 구속, 편집국 폐쇄 6월 17일자 한국일보]




▲ 공익을 추구해야하는 언론이 사익을 따라 행동

그런데 한국의 언론은 공익 영역이 아니라 일반 회사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권력에 휘둘리고 소유주 개인의 횡포에 소속 언론인 모두가 무기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론사는 발행인 또는 소유주와 편집인의 구분을 엄격히 해야하고 편집권을 기자와 편집장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 군사정권은 언론 탄압의 명분으로 발행인에게 편집권을 몰아주었습니다. 기자가 보도기사의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발행인이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돈 많은 일반인 또는 권력의 하수인이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와같은 부작용이 가장 크게 들어난 곳이 한국일보 사태였습니다. 한국일보는 사주가 지난 6월 편집국을 기자들로부터 봉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태의 원인은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이 자신의 빚탕감을 위해 회사가 값싸게 행사할 수 있었던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하면서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회사에 끼쳤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일보를 살리겠다는 기자들은 이 사실을 공론화 시켰고 사주와 그를 따르는 일부 인사들은 편집국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6월 17일자 한국일보 지면은 연합뉴스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끼는 치욕적인 신문이 발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회장의 선임으로 회사에 남은 세력들은 주장했습니다. 회장을 고발한 노조가 불만으로 가득찼고 강경노선을 채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춘추필법, 정정당당한 보도, 불편부당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 후 6월 17일자 조간 신문]





▲ 한국일보 회장 구속 

그런데 그렇게 떳떳하고 정정당당하다는 한국일보 사주 장재구는 5일 구속되었습니다. 평당 1700만원짜리 건물을 700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개인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포기한 것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가 인정된 것입니다. (관련기사)


장재구 회장이 재판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고 풀려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들어난 사실이 너무나 명백한 듯 보입니다. 왜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아무런 댓가없이 포기하느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 재산이라면 '선택'의 문제이지만 회사의 재산이라면 그와같은 결정은 경영상의 잘못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과정에 개인 빚과 관련된 거래가 있었다는 충분히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주가 한국일보의 인사권과 편집권을 모두 틀어주고 있었으니 한국일보가 제대로 되었을 리 만무합니다. 독자들은 등을 돌렸고 춘추필법의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개인 사주가 편집권을 휘둘렀다는 것이 한국일보의 문제점이자 한국 언론의 '부당함'입니다. 





[한국일보 장재구 구속, 출처 : 미디어오늘]





▲ 편집권 독립이 문제

발행인은 경영을 맡고 편집인이 기사보도의 책임을 맡는 것이 이상적인 언론사의 모습입니다. 그래야만 언론이 스스로의 비판 정신을 담보할 수 있고 나아가 공익으로서의 '세상을 보는 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행인이 편집권까지 틀어쥐면 자신의 구미에 따라 언론사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집실'까지 폐쇄당하는 수모를 겪게되는 것이고 이것은 언론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즉 언론사의 편집권은 그 누구로부터도 자유로와야하고 오직 스스로 검열에 따라 양심적인 기사를 내보내야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언론은 한국일보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사람'에 의해 검열받고 방향성이 설정되는 듯 합니다. 언론사 안에서는 '사주'의 눈치를 보고 밖으로는 '권력'의 시녀 마냥 찬양과 아첨 일색으로 기사가 변질되는 것입니다. 









▲ 한국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촛불집회 관련하여 언론에 대한 성토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2~3만명의 시민이 모여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를 매주 벌이고 있지만 방송과 신문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공익에 우선되느냐가 아니라 자기가 바라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냐 안되냐의 기준에 따른 것처럼 보입니다.  


한마디로 공익을 추구하는 '언론'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는 '회사'와 같은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언론인에게 편집권을 주지 않는 한 대한민국 언론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물론 사악한 집단에게 '언론의 죽음'은 살판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오늘도 세상을 바라보는 창은 매우 혼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