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날이 갈수록 재미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사마귀 유치원, 애정남의 인기를 꺾기도와 용감한 녀석들이 이어받아 사람들의 관심과 즐거움을 사고 있습니다.
김준호의 몸개그 작렬로 사람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리는 꺾기도는 그야말로 블랙아웃 코미디의 진수이고, 용감한 녀석들은 이 시대의 세태를 신보라의 기억해 노래에 곁들여 풍자하며, 금기에 도전하는 쫄지마 정신이 숨겨져 있는 해학 개그의 진수입니다.
그런데 개그콘서트의 인기에는 '꺾기도' 같이 아무 생각 없는 개그도 재미있지만 사회를 풍자하고 사람들의 억눌린 마음을 웃음으로 풀어보려는 까칠한 개그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마귀 유치원에서 일수꾼 최효종이 부자 탈세자들에게 바치는 탈테크 방법이라던지, ‘K잡스타’에 개그맨 박성호는 청와대 주인이 1년 후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중국집에 도전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합니다.
이렇게 일요일 밤 사람들의 웃음을 담당하는 개그콘서트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게 누구냐 하면 우리네 ‘직장인’들입니다.
금요일 저녁 지하철에 앉아서 피곤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잠을 청하려고 했습니다. 옆에 직장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둘이서 웃음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들으려고 들은 것이 아니라, 지하철이라는 만원 대중 교통이 주는 개인 밀착형 서비스 덕분에 바로 옆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개그콘서트’였습니다. 누구누구는 얼굴만 봐도 웃기더라, '감수성' 정말 웃긴다 등등 개콘 열열팬들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 여성 갑자기 우울증에 빠진 것처럼 침울해 집니다. 왜냐하면 개그콘서트가 끝나고 다음날 회사 갈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머지 직장인 또한 개콘이 주말이 주는 마지막 휴식이며 즐거움인데 이것이 끝나고 나면 다음날 회사갈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 무척 회사 나가기 싫어하는 불성실한 직장인들하고 치부해 버릴 수 있었지만 이어서 늘어놓는 회사 내에서의 살인적인 업무 강도, 불편한 직장 상사와의 관계 등 한숨과 함께 늘어 놓은 직장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서울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가는 대륙 횡단 지하철 노선의 한 역에서 내려야 했고, 그네들은 앉아서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한다 등등 소소한 이야기로 직장 동료와의 수다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도시 노동자의 불안한 삶을 그린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중 캡처]
그리고 주말 개그콘서트를 보는데 그녀들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내일 회사 가기 싫은 사람이 개콘 보고 있으면 즐겁기는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타들어가는 촛불처럼 주말의 휴식이 없어지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도 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방학 전날이 가장 기쁘고 개학 전날이 가장 우울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과 군대에서 휴가 나가기 전날이 가장 기쁘고 휴가 마지막날 내일 다시 들어가야할 군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오그라들던 경험과 흡사합니다.
그런데 왜 이리도 직장인들은 회사를 싫어하게 된 것일까요? 월요병이라는 것이 있을 정도로 전세계 모든 직장인의 공통된 마음이겠지만 한국에서의 직장에 대한 만족도와 업무 강도는 다른 여느 나라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업무 강도입니다.
한국은 OECD국가 중에서 가장 일 많이 하는 나라로 손꼽힙니다.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은 일이 많다는 것이고 일이 많다는 것은 개인의 업무량 이상의 것이 주어진다는 이야기겠죠. 이것이 야근과 잔업 등으로 이어지고, 대기업과 공기업의 경우 정당한 수당과 급여로 보상을 받기는 하지만 열악한 중소기업에서는 사장님 눈치 보기에 바빠 야근 수당을 바라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다수 직장인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OECD 최고 순위의 노동 강도하에 있으니 아무리 일 열심히 하고 부지런한 한민족이라 해도 회사 가기가 싫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 고용 불안입니다.
언제 부터인가 대한민국에는 퇴직금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대기업과 공기업, 공무원 제외입니다. 연봉제라는 요상한 제도가 생기면서 연 단위로 퇴직금을 계산해 주면서, 퇴직금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근로자는 분명 퇴직금을 받았다는데 그게 퇴직할 때 받는 것이 아니라 1년 단위로 받습니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 조건에서는 퇴직금까지 챙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인턴제나 비정규적이다 이상한 근로 제도를 만들어서 첫 직장 생활부터 불안한 것은 직장 생활이라는 등식을 알려주게 됩니다. 자신의 자리가 불안한 데 누가 회사에 가는 것을 즐거워 하겠습니까?
셋째 암울한 개인 경제 여건입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경제 지표는 다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몇몇 대기업의 매출과 순이익 등은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말하는 경제 지표는 다 안 좋습니다. 임금은 제자리에 있는데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월급의 삭감 효과는 저절로 이루어지고, 집 값은 천정의 부지를 뚫고 올라가 아무리 돈을 벌어도 월세 내는 곳에, 대출금 상환하는 곳에 다 들어가야 합니다. 결국 월급을 받아도 즐겁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회사 가기 싫은 것이 아니라 살기가 싫어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개그콘서트를 보며 열심히 웃었습니다. 웃으면 복이와요, 웃으면 건강해진다 등등 열심히 자기 최면을 걸며 새롭게 시작할 한주를 위안 삼아 보지만 이내 한숨이 배어나옵니다. 하지만 한주 또 열심히 일하면 다음 주 개그콘서트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주말이 오기에 다시 힘을 내봅니다.
으랏차차!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삶은 즐기는 인간들입니다. 행복하고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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