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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대자보를 마음대로 붙이지 못하는 슬픈 대학생

요즘 가끔 대학가 근처에 가게되면 활발하고 꿈에 넘치는 대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예전보다 더 멋있어지고 튼튼해보이는 것이 우리 학교 다닐 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학교에 다니는 후배들과 막상 대화를 나누어보면 활발하고 힘에 넘치는 외모와는 사뭇 다르게 많이 위축되어 있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젊은날에 슬픈 초상이라고나 할까요? 많이 두려워하고 스스로 위축되어서 인생의 길을 찾는 '방황'의 시기 아니라 낙망과 절망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어 보였습니다. 어찌보면 가진 것이 없기는 예전이 더 심했는데 '물질의 풍요'가 사람의 마음까지 풍요롭게 못해주는 것 같습니다. 


'물질의 풍요'보다는 가진 것에 따라서 '할 수 있고 없고'가 극명하지 않은 사회가 삶의 긍정과 만족도는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면 인생의 출발선에 선 사람들이 열심히 뛰거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지 않겠죠. 이것이 어쩌면 꿈과 낭만의 캠퍼스가 되어야할 대학을 등록금에 허덕이고 취업에 고단해하는 절망의 캠퍼스를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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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디어오늘 , 중앙대학교]




▲  대자보를 허가받아야하는 대학

그리고 학문의 자존심을 가져야할 대학이 일부 재벌 그룹이 인수하면서 보수화되어, 꿈과 낭만과는 거리가 먼 '직업 양성소'처럼 변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대 진보신당 학생모임 소속 대학생들이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에 도장을 받으러 학생지원처에 갔다가 '현대차 간접광고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합니다. 


90년대 대학을 다닌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학교에 등록금을 내는 것도 학생이고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라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학생들의 교내 활동인 '대자보'마저도 학생처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차의 비정규직 문제를 꼬집은 대자보 내용에 대해 '현대차 간접 광고'가 이유라면서 거부한 학생처의 결정은 더더욱 황당합니다. 그들은 역시나 학교 내에서는 '학칙'이 최우선이며 학생의 본분으로 현대차 같은 노조문제를 대학게시판에 붙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대자보를 보고 있는 학생들, 출처 경향신문]




▲ 법과 원칙을 주장하는 사람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원칙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언제나 입에 '법과 원칙'을 달고 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남을 위한 '법과 원칙'일 뿐입니다. 법과 원칙 이전에 상식과 기본 도리와는 무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언제난 근엄한 척, 정의로운 척, 남을 위하는 척 합니다. 


대학생들이 캠퍼스 내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토론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자 젊은이로서의 의무입니다. 이것은 재벌이 소유한 재단이 만들어낸 학칙에 견줄 수도 없고 굳이 법을 따지자면 '헌법'에 있어서 '사상의 자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학칙' 운운하며 거부한 학교는 학칙을 남용하여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부당한 대자보는 현재자동차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비정규직 문제만큼 가슴에 와 닿은 것이 또 있을까요? 학생지원처라면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는 물론 졸업하고서도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을 도와야하는 부서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길 원하며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직장만 가라고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일자리는 턱 없이 부족하고 괜찮은 일자리 마져도 재벌의 탐욕으로 비정규직화되어가는 현실에서 학생들이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미래의 소비자입니다. 그들은 젊고 힘에 넘치며 순수합니다. 그들이 잘못된 사회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바로 잡으려 한다면 그 어떤 세력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입니다. 


그리고 우리 현대사의 암울했던 군사 독재시대를 뚫고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생들의 희생과 용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대자보를 허가받아야 붙일 수 있는 슬픈 대학

그런데 이제는 대학생들이 대학 내 게시판에 대자보 하나 마음대로 붙일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상당수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도서관에 있고 사회 문제에 관심조차 가지려 하지 않지만 아직도 이것을 이야하고 친구들과 나누려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로 보았을 때 매우 소중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대학이 학칙을 내세우면서 검열하고 막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학생이 학교의 주인인데 주인된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은 헌법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학생들의 시급한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그들의 생각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학교와 이 사회의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대자보를 볼 수 없는 대학 캠퍼스, 어쩌면 이 땅의 대학생들이 청춘이 아니라 '보수화'되어간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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