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개그'를 하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다큐'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대략난감'이라는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웃자고 한 말을 상대방이 너무나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드려서 원래 의도했던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소통의 부제'가 생기는 전형적인 예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표현 방식에 대해 규제하고 통제받으면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반응 보이기를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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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용감한녀석들 정태호 캡처]
▲ 개그콘서트 행정지도
2012년 12월 23일에 방영된 '개그콘서트' 용감한녀석들 편에서 코미디언 정태호가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 반말조 또는 훈계의 언사를 했다고 하여 행정지도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행정지도를 내린 곳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설립한 공정한 방송, 건전한 통신문화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위) 입니다.
<용감한 녀석들>에게 내린 행정지도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용감한녀석들 행정지도에 대한 KBS 개그콘서트 시청자 게시판 내용 캡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27조 (품위 유지) 제 1항이 적용되어 개그콘서트에게 '행정지도'가 내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품위유지'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가지고 얼마만큼 더 적용하고 덜 적용할지는 인간의 선택이지 절대 기준은 없어 보입니다. 그 만큼 방송심의위원들의 인격과 능력을 믿어야 하는 경우인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행정지도 내용을 보면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총 세 단락 중에서 첫째 단락에서만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이라 발언내용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말입니다.
▲ 훈계는 누구도 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런데 두번째 단락에서의 '아직 국정을 시작하지도 않은 대통령 당선인을 대상으로 훈계조로 발언한 것은 바람직한 정치풍자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심의는 매우 민감한 내용으로 판단되어집니다. 왜냐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가기관이며 현대인에게는 공기와도 같은 방송미디어의 심의규정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명단 출처 : 위키백과]
그들의 심의대로 한다면 누구도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서 아직 자신의 보직을 시작하지 않은 정치인에게 '훈계'를 하면 안되는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그러나 공직자에 대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투표권을 가진 국민이나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은 훈계 또는 바램을 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견제와 균형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취지이기도 합니다.
▲ 반말이 시청자에 대한 예의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세번째 단락, 대통령 당선인에게 '잘 들어' 등의 반말을 하용한 것은 시청자에 대한 예의와 방송의 품위유지라는 차원에서 부적절하다고 합니다. 대통령 당선인에게 반말을 했다고 해서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주장은 너무나 논리적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말로 박근혜 당선인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기분 나쁜 인상을 주었을 지 모르나 용감한 녀석들은 계속해서 본 사람들이라면 그 대목에서 '존댓말'을 사용한 것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개그콘서트> 용감한녀석들을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문제의 장면만 딱 잘라 보여주면 당연히 '버르장머리 없네'라고 반응하겠지만, 버르장머리 없고 다소 건방지게 보이는 컨셉이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용감한녀석들' 코너의 주요 상황 설정인 것입니다.
개그 프로그램은 교훈을 얻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정보를 바라면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웃으며 즐기자는 프로그램인데 그 대상이 권력자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언사를 '존댓말'로 해야 한다는 심의 내용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더군다나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개그맨 정태호의 언사를 두고 제 3자인 시청자들 언급하며 '예의'와 '품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듭니다.
개그맨 정태호가 그날 방송에서 욕설을 했다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퍼부었다면 '행정지도' 감이 맞습니다. 하지만 개그식 말투로 훈계와 반말을 했다고 해서 KBS 간판 프로그램이자 직장인들이 주말의 끝을 잡고 즐거움을 느끼는 개그콘서트에게 행정지도를 내린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 인수위 홈페이지 캡처]
▲ 서민과 함께 하는 대통령
박근혜 당선인은 분명 서민과 함께 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는데 그 정부를 떠받들 사람들은 국민 보다는 박근혜 당선인의 품위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벌써 트위터에서는 '어디 무서워서 높은 분께 반말 하겠냐'라는 볼멘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또한 군부 독재 시대로 회귀한 것처럼 사람들의 언사 하나하나 문제삼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이 시대에 대통령에게 반말을 하냐 마냐는 우리가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 있어서 본질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면 반말하라고 해도 존대하는 것이 사람의 천성입니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 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표어처럼 너무 지나치게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국민의 웃을 권리를 위해 최고 권력자의 품위가 다소 떨어진다 해도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권이 국민과 함께 하는 정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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