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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10일째, 촛불은 부처님 얼굴이다?

2013년의 반이 지났습니다.6월 30일, 전반기의 마지막날이며 주말이었던 어제, 광화문은 폭염으로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하지만 광장의 차가운 분수가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었고 아이들과 연인들의 파릇파릇한 생명력이 대지를 충만케 하였습니다.  



촛불집회 10일째,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하고 마지막 칠일째는 쉬었다고 하는데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는 휴일 없이 열흘째를 맞이하였습니다. 




가는 도중에 더위에 지쳐 광화문 광장에 앉아 아이들의 시원한 물놀이를 보면서 마음 한켠의 무거움을 내려놓고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분수에 뛰어들까 치마는 걷어 올렸지만 선듯 용기가 나지 않아 주저하고 있는 젊은 여학생 옆을 꼬마가 쏜살같이 지나가며 놀리는 듯 합니다.   






<손바닥 꾹><추천 꾹>



그리고 분수를 향해 돌진하는 여학생, 분수에 뛰어들기에는 나이가 좀 있어 보였지만 아직 파릇파릇한 젊음이 있기에 가능하고 참으로 재미있는 한 장면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옷은 이미 물에 흠뻑 젖었고 물속에서 뛰어노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더위는 잊고 삶의 생명력이 넘쳐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꼭 더워서 분수에 뛰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이유없는 행동에 익숙하고 노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이유 있는 행동만 하여야 한다고 배우고 익혀서 '분수에 뛰어드는 행동'은 유치한 행동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옷이 젖고 남들이 보면 어떨까 여러가지를 고려해야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비겁한 의지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좀더 순수했더라면 조금더 행복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제도 여전히 전경들은 촛불집회 행사장을 막고 있었습니다. 절대로 도로 한켠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 한복판에 대열지어 서 있기 때문에 집회장에 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의식을 치루게 만들었습니다. 도로를 지나 집회장을 가는 것이 아니라 경찰을 지나야만 촛불집회에 갈 수 있다는 일종의 방어막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신고된 집회를 도로 전후좌우에서 이토록 경찰로 둘러쌓아놓고 집회 참여 인원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서 한 고등학생도 말했지만 의무로 근무하는 경찰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경찰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정치에 관심 있는 일부 상급자들 때문에 욕 먹고, 격무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그들도 경찰복 벗고 일반인으로 돌아오면 상당수는 촛불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적 민주시민들이라 생각합니다. 




광화문 파이낸셜센타 앞 마당에는 여전히 학생 시민들로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열흘째인데 이 정도 했으면 지칠만도 한데 전혀 피곤한 기색 없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아 촛불집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주말 토요일 집회 때보다는 사람이 줄었지만 하나님도 휴식을 취했다는 일요일 저녁에 이처럼 많은 시민 학생이 국정원 규탄을 위해 시내 한복판에 모였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놀랍다기 보다는 한편으로는 슬프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열흘씩이나 모여 국정원 규탄과 책임자 구속 수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자는 열심히 집회 분위기를 북돋우며 자유발언자와 공연팀을 선전하고 소개하였습니다. 




이날 '민중가요 동아리'라고 자신들은 소개한 팀이 있었는데, 이들은 전날 고등학생 시국선언을 한 간디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높았고 발언 내용도 좋았습니다. 그들의 공연을 보고서는 미래의 형님 누나를 따라서 사회의 행동하는 빛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습니다. 




이날은 이상하게도 촛불 사진이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일요일 저녁, 한가한 시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발언 내용이나 사람들보다는 한손에 살포시 올려져 있는 촛불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한 손에는 피켓과 다른 손에는 촛불을 들고 열심히 구호를 따라부르고 공연팀을 응원하는 시민 학생들 모습에서 꺼져가는 줄로만 알았던 민주주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구요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 원세훈 구속수사' 무리하지도 않은 요구사항을 위해서 촛불을 들고 열흘 동안이나 광화문 광장을 지켜야하는 국민된 입장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날 촛불집회 장소에는 꼬마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촛불을 들고 카메라를 열심히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았지만 상대적으로 커다란 부담감 역시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맑고 이쁜 아이들이 불공정하고 썩어빠진 세상에 물들고 상처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귀여운 아이들입니까?  엄마 손을 붙잡고 광화문까지 따라나온 아이들 손에 들려진 촛불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결코 이 아이들에게 나쁜 나라를 물려줘서는 안되겠다는 결의 같은 것 말이죠.. 




학생들은 젊고 힘이 넘쳤습니다. 열흘이 되었건만 지치지 않았고 더욱더 단단해져만 가는 것 같았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이야기 했지만 더 많은 노래와 춤,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촛불도 학생들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치듯 힘이 넘쳐 흐릅니다.  




어떤 촛불을 하늘을 향해 타오르기도 하였구요.




집회는 막바지에 이르렀고 사회자는 다시한번 힘있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국정원을 규탄한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하라!"




학생과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피켓을 들어올리며 구호를 따라는 것이었고,




꺼지지 않는 촛불을 계속해서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쌍용차 노동자분이 발언자로 나와서 연대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쌍용차 국정조사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쌍용차 분향소가 설치되었던 대한문 앞은 '인권'이 존재하는 않는 곳이다." 국정원 국기문란 만큼 노동질서를 문란케 했던 쌍용차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쌍용차 문제의 핵심은 대한민국의 '노동의 질'의 문제와 같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외면했고 경찰은 그들을 죄인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권력의 약자를 다루는 방법이고 그래서 국정원 게이트 문제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한 여대생의 마지막 자유 발언이 있었고 더욱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지는 촛불집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어렸을 적에 절에 가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부처님 얼굴을 보고 무서워하면 죄가 많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부처님 얼굴 앞에서는 더욱더 당당해지려고 폼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옛날, 절에 있는 부처상은 요즘처럼 나이스하거나 잘 다듬어져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 보기에 그리 유쾌하거나 흐뭇한 얼굴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촛불은 부처님 얼굴입니다. 죄 없는 정치인에게 촛불은 아무것도 아니고 도리어 아름다움의 대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촛불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비난하는 권력자들은 마음 속에 큰 죄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치 죄많은 인간이 부처님 얼굴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가 어제 바라본 촛불은 너무 아름다왔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서 아름다왔고, 촛불을 손에 든 한명 한명의 마음이 더욱 빛났습니다. 이번 촛불은 그래서 쉽게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촛불이 두려운자, 미리 이실직고 하여 죄를 탕감 받은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어서 빨리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