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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고등학생보다 못한 어른들

어제는 고등학생들이 국정원 사건 관련하여 시국선언을 하였습니다. 고등학생은 통념상 아직 어른이 아닌 청소년입니다. 그런데 아직 철이 들었다고 하기 힘든 나이의 아이들까지 나라가 잘못되었다고 선언하고 나선다면 이 나라가 무엇인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등학생 시국선언 출처 경향신문]



충남 금산 간디학교, 인천 강화 산마을 고등학교, 경남 산천 간디학교, 충북 제천 간디학교 등 4개 학교 80여 명의 학생들은 이날 시국선언에서 "고등학생들의 안목으로도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경찰이 이를 수사하며 축소,은폐한 것은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며 "국정원장과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관련기사)


어른으로서 정말로 창피한 것은 '고등학생의 안목'이라는 대목입니다. 어린 고등학생들이 보기에도 국정원 대선 개입, 경찰 축소 은폐 사건은 한마디로 황당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고등학생들의 안목만도 못한 어른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고등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던 어제 역시 광화문 파이낸셜 광장 앞에서는 한대련 주최 촛불집회 열렸습니다. 전날 모였던 열기가 식지 않았는지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워 주었습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광화문에는 시민들이 발길이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둠이 드리우니 촛불이 불을 밝히려는 듯, 대학생과 시민들이 8일째 촛불집회를 멋지게 시작하였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주었습니다. 어제 전국 집회 이후에 촛불집회에 대해서 더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비단 학생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사회자의 구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함께 함성을 높였고 자유 발언 시간에는 함께 분노하고 즐거워하며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공감하게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많은 분들이 자리를 메워주셨고 어제 3,000 여 명 보다는 적었지만 1,000 여 명 이상의 시민들이 촛불 집회에 참석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어제는 폭염 주의보까지 내려서 좁은 장소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기 매우 무더웠는데 더위의 짜증보다 국정원 규탄의 분노가 더 높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대열의 흐트러짐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자유발언과 대학생들이 준비한 각종 공연이 펼쳐졌는데 시민들의 호응 또한 매우 높았습니다. 발언을 할 때는 박수와 함성으로 호응해주었고 학생들의 신나는 율동에는 함께 어깨와 몸을 움직이며 함께 즐기는 집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집회는 보수단체의 묻지마 방해 집회로 시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바로 옆 청계광장에서 진행되는 '캐나다 페스티벌'이라는 행사때문에 혼란스러웠습니다. 




빵빵한 조명과 음향 시설로 무장한 바로 옆 청계광장 무대에서는 연예인이 사회를 보고 유명 가수가 나와서 흥을 돋구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많은 시민들이 촛불집회는 뒤로한체 연예인 행사에 관심을 높였습니다. 




청계광장 캐나다 페스티벌은 촛불집회보다 더 뜨거운 반응과 카메라 후레쉬가 터졌습니다. 바로 지척에 우리의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린 중대한 사건에 대한 규탄 집회가 있었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그러한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오직 얼굴 아는 연예인들의 잘 꾸며진 무대에만 정신이 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초대 가수는 무엇을 좀 아는 것인지 "What a wonderful world"를 멋드러지게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집중했고 감동하며 환호했습니다. 그 감동과 환호 속에 촛불집회의 빈약한 무대와 음향은 당연히 묻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화려한 조명과 음향 시설을 보세요. 캐나다 페스터벌은 너무나 성대하고 멋진 행사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촛불집회 바로 옆에서 말입니다. 





그 와중에 촛불집회에서는 대학생들이 준비한 꽁트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재미있는 광경입니까? 한쪽에서는 다른 나라의 홍보 페스티벌이 열리고 초대 가수는 "얼마나 놀라운 세상인가?" 삶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운데 한 켠에서는 민주주의 훼손 국기문란 사건에 대해서 성토하고 규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로 "What a wonderful world" 였습니다. 세상은 정말이지 놀랍고 신비합니다. 그러나 이날 시국선언한 고등학생들이 청계광장에 있었다면 연예인 페스티벌보다 촛불집회에 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매우 엄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감동하며 웃고 즐기기에는 이 땅의 상식과 법은 너무나 혼탁하고 부패해버렸습니다. 작년 국정원 대선개입, 경찰의 은폐 왜곡 수사 사건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정점인 것이구요 




조명도 없고, 음향시설은 언제 끊길지 불안불안 하였지만 촛불집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촛불집회를 주최한 대학생들이 낮에 이미 대학로 등지에서 선전전을 벌였던 탓인지 집회 이후에 다른 행사는 없없지만 날이 갈수록 단단해지는 학생들의 촛불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리 좋은 것인지 아니면 마음 속에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자리를 메웠던 시민들은 끝까지 남아서 촛불과 카드를 들면서 국정원 규탄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민주시민답게 끝에 남아서는 버려진 카드와 쓰레기를 분류하고 재활용하는 모습까지 아름다운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이 언제까지 광화문을 지키며 촛불집회를 할 것인지 지금으로써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생과 시민들의 의지와 단단함을 보았을때 이들이 요구하는 것을 정부가 들어주지 않으면 결코 물러섬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촛불집회 9일째, 오늘도 광화문 파이낸셜빌딩 앞에서 국정원 규탄의 목소리는 계속 울려퍼질 것입니다. 고등학생보다 못한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한번 참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최소한 고등학생들보다는 높은 안목을 가진 어른들은 말입니다.



2013/07/01 - [까칠한] -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10일째, 촛불은 부처님 얼굴이다?